나만 졸업 못한대!

열 한살 아이의 폭풍우, 엄마 눈엔 산들바람

by Wishbluee

2025년 12월 12일 오후 6시



"다녀왔습니다!"


우렁찬 벨소리와 함께 꼬맹이가 귀가했다.

학교를 마치고 주산학원과 피아노학원 두 개를 다녀오느라고 제법 피곤해 보인다.


"배고파요"


라며 소파에 쭈르륵 누워서 삐딱한 자세로 책을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딘가 평소와 다른 얼굴.


"왜 그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쭈르르 엄마한테 달려와서 포옥 안기는 꼬맹씨.


"오늘 주산학원에서 졸업 명단에 내가 빠져있었어! 00 언니도, 000 이도 졸업하는데. 나만 졸업 못한대. 나만!"


빠르게 도도도 말하는 속도를 내 귀는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얼른 밥을 해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더더욱 집중을 방해하고 있었다.

나는 듣고 있는 척을 하다가, 대충 생각나는 대로 대답한다.


"어어. 그럴 수도 있지. 그 친구들이 좀 더 잘했나 보지. 너도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어."


꼬맹씨는 입이 쭈욱 나왔다.


"누가 그걸 몰라!"


그리고는 엄마 품에서 튕겨져 나와 다시 쇼피에 풀썩 앉아서는 입을 내밀고 책을 읽는다.


나는 얼른 고등어를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돌린 뒤, 국을 레인지에 데웠다. 반찬들을 곁들여 식판을 채워 내어 놓았다. 그리고 한숨을 조금 돌리고 나니, 샐쭉해진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파로 가서 풀썩 아이의 옆에 앉아서, 작고 가녀린 어깨를 끌어안는다.

"엄마가 미안해. 많이 속상했어?"

아이는 말없이 내 품에 온몸을 맡기고는 조그마한 입을 삐죽이다가 눈물을 또르르 흘린다.

제 딴에는 너무나 속상했는데,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말이나 하는 엄마가 미운가 보다.


선생님께 문자를 드려 여쭈어보니, 원래 졸업예정자였던 울 꼬맹씨는 아직 졸업하기에는 실력이 덜 무르익었다 판단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회의를 한 끝에 두어 달 졸업을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하셨다. 그걸 아이에게는 미처 설명을 하지 못하신 모양이다.


그러니 꼬맹씨는 갑자기 명단에서 제외되어 소외감을 느꼈던 것이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리고 그걸 티 낼 수도 없어 꾹 참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앙탈을 부렸더니.

엄마는 받아주지도 않았다.


일곱 살이 많은 큰애의 세상을 보다가,

일곱 살이 적은 둘째의 세상을 보고 있으면


나는 동화 속 꿈나라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꽃과 나비가 노래 부르고, 새가 날아다니는 환상의 나라.


하지만 그 나라도 비가 오고, 번개도 치고, 바람도 부나 보다.


우리 꼬맹씨도 나름대로 폭풍우를 견디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걸 산들바람으로 보고 있었으니.

억울한 아이의 마음은 갈 데가 없었으리라.


"그러게.. 엄마 같아도 속이 많이 상했을 것 같아. 나만 빼고 다 앞서가는 기분이었겠다. 열심히 했는데..."


손을 꼬옥 잡고 마음을 알아주니, 꼬맹씨의 나온 입이 서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는지 열심히 식판 위에 밥과 반찬을 해치우고 나더니, 다시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뺨이 발개졌다.

뾰로통한 입가는 다시 활짝 웃음으로 번져서,


"엄마, 오늘 오는 길에! 또 새로운 새를 봤어요. 나 이제 그냥 쌍안경을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아요!"


아, 큰일 났다.

나는 다시 아이의 세상이 동화 속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 눈가의 일곱 빛깔 무지개 솜사탕 같은 구름을 걷어내야 할 텐데.


꼬맹씨는 벌써 열 살이 넘었는데,

엄마눈에는 아직 네 살 사랑둥이니,

이것 참 큰일이라고 생각해 보는 오늘이었다.



사진: Unsplash의Nasrin Pak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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