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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mango Sep 21. 2016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꽃씨를 심다-

독서교육 사례: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를 치는 말썽꾸러기, 병관이가 아침 일찍부터 나와 교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마주한 나는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며 연유를 물었다.  

  “선생님, 오늘 공개 수업하는 중요한 날이라면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듯 하였다. 사고뭉치인 줄만 알았더니 선생님 과 친구들을 위해 아침 8시부터 와 청소를 했다는 병관이. 예상치 못한 병관이의 깜짝 선물에 그동안의 노고가 사르르 풀리면서 햇살 한 조각이 마음에 걸린 듯 따뜻해졌다. 그렇다. 먼저 내미는 사랑의 손길 앞엔 미웠던 마음도 말끔히 사라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또 한해를 견디는 것이다. 이 감동의 여운을 몰아 오늘은 '햇살 한 움큼'과 같은 책, 리디아의 정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책 첫 장을 열면 환한 햇살 한가운데 해바라기, 금잔화, 호박꽃 등이 가득한 정원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는 할머니와 리디아의 행복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다음 장엔 조만간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올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감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리디아가 보내는 편지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할머니와 정원을 가꾸는 일을 무척 좋아하는 리디아는, 아빠의 오랜 실직으로 형편이 어려워져 외삼촌네에 가야만 한다.

 저는 작아도 힘은 세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거들어 드릴게요.

 외삼촌께 보내는 리디아의 편지를 읽어 보면 리디아가 얼마나 씩씩하고 성숙한 아이인지 알 수 있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머니댁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나는, 생떼를 쓰며 무작정 집에 가겠다고  우겼다고 한다. 울며 '밥 안 먹기 시위'를 벌였다고... 그러나 리디아는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직감적으로 알고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슬픔도 내색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가족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거들고자 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외삼촌을 처음 만난 역사 안은 황량하기만 하다. 외삼촌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거리의 사람들은 생기를 잃었다. 무채색의 도시, 외삼촌네 빵집 주변은 쓸쓸한 기운이 감돌뿐이다. 그러나 리디아의 눈은 달랐다.


이 동네에는 집집마다 창 밖에 화분이 있어요.


 녹색의 싱그러움과 비슷한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이 황량한 곳에서 리디아는 ‘화분’이라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았다. 더불어 어두운 골목을 향해 내리비치는 한줄기의 빛도 말이다. 잠시 머물다 떠날 수도 있는 이곳에서 리디아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까? 외삼촌을 도와 간간히 빵을 만드는 것을 배우면서 틈틈이 비밀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할머니께서 종종 보내주신 꽃씨를 깨진 컵이나 찌그러진 팬에다 심으며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어있던 창밖의 화분에 꽃씨가 담기면서 무채색의 건물에 자연의 색이 칠해졌다. 잿빛의 도시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물들고 향긋한 꽃내음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는다.  생기 잃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꽃이 폈다. 무엇보다 리디아의 비밀 프로젝트로 외삼촌의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빈 병과 쓰레기가 굴러다녔던 옥상이 나팔꽃, 수선화, 모란이 가득한 꽃밭으로 변신할 걸 본다면 어찌 미소가 나오지 않겠는가. 외삼촌은 답례로 꽃으로 장식한 커다란 케이크와 아빠의 재취업 소식이 담긴 편지를 리디아에게 전해주었다.


나희덕씨의 '길 위에서'라는 시를 보면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게' 있다고 했다. 지나간 자리마다 원예사의 본분을 잊지 않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던 리디아. 그녀가 남긴 것은 눈에 보이는 꽃만이 아니었으리라. 바람이 살며시 불어올 때마다 코 끝에 스치는 싱그러운 꽃향기와 화선지처럼 마음에 번지는 봄내음이 오래동안 그곳에 자리하겠지.


 불황의 암흑 속에서 내면의 무수한 가능성의 꽃씨를 가장 적절한 때에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낸 리디아. 한줄기의 빛, 희망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리디아처럼 내면에 무수한 가능성의 꽃씨를 지니고 있다. 그 씨앗을 꽃으로 피우게 하는 것은, 내 주변이 아닌, 나의 손에 달려있다고 리디아는 이야기한다. 변화를 이끄는 물결은 '너'가 아닌 '나'로 부터 출발하고 삶의 현장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것은 결국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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