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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mango Sep 21. 2016

따뜻한 시선의 힘

독서교육 사례: 그림책 <점>

                                                                                                                                                                            

"표지에 무엇이 보이나요?"

"어떤 아이가 엄청나게 큰 점을 색칠하고 있어요."

"어떤 내용이 펼쳐질까요?"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읽어준 그림책이다. 아침 독서시간에 도무지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림만 대강 훑어보는 아이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세번씩 책을 읽어주기로 결심하였다.

  미술 시간 베티는 어떤 것을 그려야 할지 막막해 텅 빈 도화지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미술 선생님은, 백지의 도화지를 들여다보더니, "와!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그렸네."라고 격려해주었다. 아이들은 색다른 선생님의 반응에 의아해하였다. 물론, 나 역시 이 부분을 읽어주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평상시 나의 모습과 대비가 되어 내 마음이 묘하게 찔렸다. 만약 이러한 학생이 내 앞에 있었더라면, 빨리 그리라고 다그쳤을 것 같은데...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베티는 뾰루퉁한 얼굴로 도화지 위를 연필로 힘껏 내리꽂는다. 이쯤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 아이들은, "화를 낼 것 같아요. 그리지 말라고 할 것 같아요."라는 의견들을 내놓는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선생님은, 이름을 쓰라고 하였다. 그리고 멋진 액자에 베티의 그림을 걸어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베티는, 더 멋진 점들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여 작품 전시회를 연다.


 선생님은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베티에게 작은 "점" 그림 조차 존중해주었고 베티 스스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난 이러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 그들의 고민과 걱정들을 위엄 있는 목소리로 뭉개버리고 억압하고 다그치기 일쑤였던 내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베티의 '점' 작품 전시회를 보며 지나가는 한 아이는  베티의 미술 실력을 무척 부러워하였다. 자를 대고도 선을 똑바로 못 그려 고민인 그 아이에게, 베티는 미술 선생님이 자신에게 해줬던 그대로, 하얀 도화지를 주며 한번 시작해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가 그린 비뚤비뚤한 선을 한참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학생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켜보아 주는 따뜻한 시선은, 학생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독창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따뜻한 시선을 받았던 아이는, 또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전달한다.

 나의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훈육방식은, 결국에는 학생들의 내면 속에 은연슬쩍 강압과 억압을 가르칠 뿐이다. 학생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보듬어줄 수 있는 연습을 해보자고, 되뇌게 만드는 책이었다.


 우리 반 말썽꾸러기가 이제는 틈만 나면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는다. 베티의 무례한 행동과 상관없이 베티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존중해주었던 선생님의 따스한 시선이 윤우 마음의 어느 구석을 건드렸으리라. 평상시에는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윤우였는데,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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