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육 사례: 그림책 <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
쉬는 시간이 되면 쪼르륵 달려오는 아이들.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을 이른다. 오늘은 동균이가 씩씩대며 말했다. “윤우가 공책으로 머리를 치고 도망갔어요.”라고. 자기는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데, 윤우가 일방적으로 괴롭힌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상대편 윤우의 이야기를 들으면, 예상치 못한 이유가 튀어나왔다. “어제 방과후에 동균이가 놀이에 끼워주지 않았단 말이에요.”
학생들의 다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과 복수가 묘하게 얽혀있다. 복수는 꼬리를 물고 장난으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한 아이의 분노 폭발과 싸움으로 번졌다. 복수를 종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아기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 그림책을 학생들에게 읽어주었다. “제목만 들었을 때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돼지의 복수극이요.”라고 이구동성으로 답한다. 그중 말썽꾸러기 윤우의 눈빛이 가장 빛난다.
『아기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는 『아기돼지 삼형제』의 패러디 그림책이다. 원작에서는 늑대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아기 돼지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크고 못된 돼지로 변신을 하여, 아기늑대 세 마리를 쫓아다니며 못살게 군다. “여러분이 만약 아기늑대라면 제일 먼저 어떤 집을 지을래요?”라고 학생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원작에서처럼 ‘짚’으로 집을 짓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기늑대 세 마리는 영특하게도 처음부터 튼튼한 벽돌집을 짓는다.
못된 돼지는 아기늑대 집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아기늑대 세 마리는 허락하지 않는다. 돼지는 벽돌집을 입으로 훅 불어 날려버리려고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이 만약 못된 돼지라면 어떻게 할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몰래 숨었다가 아기늑대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요. 그리고 기습 공격해요.” 또는 “망치를 가져와 부셔요.” 등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을 신나게 늘어놓았다. 평상시에 발산하지 못한 공격 욕구를 이참에 원 없이 풀어놓는다. 돼지가 쇠망치로 벽돌집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보여주자, 남자아이들은 쾌재를 부르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 장에서는 “이제 아기늑대들은 어떤 집을 지을까요?”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벽돌보다 더 튼튼한 집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기늑대들처럼 ‘콘크리트 집’을 잘도 찾아냈다. 선생님이 질문도 하기 전에, 못된 돼지가 이번에는 어떤 도구로 콘크리트 집을 부술까 궁리했다. 대포, 폭탄, 드릴, 다이너마이트 등 살상 무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학생들 입에 오르내렸다. 못된 돼지가 구멍 뚫는 기계로 콘크리트 벽을 뚫는 장면을 보여주자, 학생들은 최고라며 엄지 척을 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패러디 이야기에 학생들은 열광을 했다.
겨우 빠져나온 아기늑대 세 마리는 강철집을 짓는다. 학생들은 아기늑대들의 집이 단단해진 만큼, 못된 돼지의 횡포도 훨씬 난폭해질 거라는 것을 안다. 진보에 후퇴는 없기에. 강철판과 커다란 자물쇠로 무장한 집이 다이너마이트라는 무기에 맥없이 사라지는 장면을 본 몇몇 학생들은 아기늑대들의 항복을 선언했다.
여기서 마지막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이제 아기늑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이야기의 결말을 써보자고 제안했다. 학생들은 못된 돼지의 공격을 피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어 해결책을 찾았다. 강철 집보다 더 안전하고 튼튼한 집이 무엇일까 궁리하는 와중에, 다이아몬드로 집을 짓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한 학생이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비싼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구하냐는 현실적인 물음 앞에, 이야기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어떤 학생들은 집을 짓는 장소를 바꾸자고 이야기했다. 못된 돼지가 올 수 없는 바다 속이나 하늘에 살자고. 아니면 못된 돼지가 나타날 때마다 도망갈 수 있게 카라반에 살자고. 나는 매일 같이 못된 돼지가 나타날 때마다 공포에 떨며 도망가야 하는 삶의 피곤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해보자고.
우리는 평화를 갈망하지만, 여전히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다. 지구상 유일하게 분단국가이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협 속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날 선 대립 속에 평화의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 이야기의 결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군대가 강하면 승리하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오래가지 못하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놓이고
부드럽고 미세한 것은 위에 놓인다네.
- 이석명 저 ‘백서노자’ 중에서-
아기늑대들은 집을 짓는 재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시선'을 바꾼다. 처음에는 못된 돼지의 공격을 피하려고 튼튼하고 단단한 재료만을 고집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무기로 터전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고서야, 강한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연약하고 쉽게 부서지기 쉬는 ‘꽃’으로 집을 짓기로 결정한다.
학생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못된 돼지가 예쁜 꽃들을 쉽게 망가뜨릴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못된 돼지는 꽃 앞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돼지도, 입으로 훅 불어서 꽃집을 단숨에 날려버리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입으로 불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는 찰나, 부드러운 꽃향기가 돼지의 코끝에 전해진다. 향긋한 냄새로 마음속에 파문이 인다. 잔잔한 파동은 완악한 돼지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강하고 큰 것이 아닌, 부드럽고 미세한 것이 '위에 놓임'을 확인하는 찰나였다.
돼지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상한’ 돼지의 모습에 처음에 아기늑대들은 의심을 한다. 그러나 꽃 앞에 해맑은 돼지의 표정을 보고서야, 그의 진심을 깨닫는다. 그리고 굳게 잠갔던 대문을 열고 돼지를 맞이한다. “우리 집에서 차 마시는 건 꿈도 꾸지 마”라고 외쳤던 아기늑대들은, 돼지와 함께 차를 마시는걸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 주전자, 어디서 봤더라. 그림책의 첫 장부터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어김없이 등장하는 찻주전자.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찻주전자’에 있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화는 함께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