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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없는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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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Aug 29. 2023

당신도 나와 같다면

게으른 게 아니라 예민한 거예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배달 음식을 시킬 때 반찬과 국은 빼달라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 너무너무너무 세상에서 가장 싫다. 소스가 흥건하거나 국물이 있는 음식은 애초에 시키지 않는다. 잘게 썰어진 건더기가 양념으로 있는 것이 최악이다. 일일이 골라낼 수도 없는 자잘한 파, 부추, 양파 같은 것이 그릇에, 배수구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을 극혐 한다. 젓가락으로 쏙쏙 집어먹을 수 있거나 마지막까지 싹싹 긁어먹을 수 있는 것, 다 먹고 나서 그릇은 물에 쓱 헹구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음식만 집에서 먹는다. 물에 헹굴 때 자잘한 찌꺼기들이 나오지 않는 음식들, 예를 들어볼까?


돈가스/ 순살 후라이드 치킨: OK. 하지만 국과 반찬은 빼고 주세요. 맑은 국물만 주면 모르겠는데 둥둥 떠 있는 대파를 일일이 젓가락으로 건져낼 수도 없고 - 사실은 건져봤다. 그런데 빠짐없이 모두 건졌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남아 - 나중에 배수구에 달라붙는다.

카레: OK. 여러 번에 나누어 끝까지 다 긁어먹으면 되니까. 하지만 국과 반찬은 빼고 주세요.

쌀국수/ 짬뽕: NO. 나는 국, 탕에서 국물을 다 마시지 않는다. 즉 언제나 국물이 남는데, 아무리 열심히 건져먹어도 국수 부스러기와 자잘한 건더기들이 남아있다. 이걸 배수구에 버리고 처리하는 일을 상상하면 밥을 먹기 전에 밥맛이 떨어진다.

김치류: NO...... 양념 국물까지 박박 긁어먹을 것이 아니라면, 잘게 썰어진 부추/파 등이 배수구에 찰싹 붙어 있는 것을 일일이 긁어내야 한다. 으, 끔찍해. 가끔 김치가 들어오면 마지막에는 양념을 모두 부어 김치찜을 해 먹는데 - 찌개는 뒤처리가 번거로워서 국물 없는 찜으로 한다 - 마치 내가 친환경 생화학 음식물 처리기가 된 느낌이다. 그렇게 해도 마지막에는 배수구에 자잘한 배추, 파, 마늘 부스러기가 달라붙어 있는 것을 목격한다.

오이 피클 슬라이스 병조림... 이제 눈치챘겠지만, 오이씨와 피클링 허브들이 떠 다녀서 안 된다.


배달 음식을 시키기 전에 리뷰와 사진을 열심히 쳐다본다. '소스가 많아서 좋아요' 같은 리뷰가 있으면 거른다. 자질구레한, 처리하기 귀찮은 반찬들이 있는지 여부도 자세히 본다. 깨끗하게 모두 집어 먹을 수 있거나, 찌꺼기가 걸리지 않고 물에 흘러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빼달라고 한다.

서비스로 원치 않는 품목이 오면 아뿔싸, 그렇게 열심히 피하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당하다니, 허탈하다. 과일을 시켰는데 먹지 않는 참외(그렇다, 참외씨 때문이다)를 넣어준다거나 말이다. 다시 리뷰를 열심히 살펴서 서비스를 주는지, 서비스 항목이 뭐가 오는지 찾아보고 '서비스는 필요 없어요'라고 요청사항에 쓴다. 그런데 애초에 서비스를 줄 생각이 없었으면 어쩌지, 민망하지만 할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커피 필터로 걸러서 버리는데, 커피 필터로 거른 들, 이걸 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고 마르길 기다려야 한다. 내가 음식물 쓰레기와 시공간을 공유하기 위해 이 비싼 집세를 내는 것이 아닌데.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는 쓰고 싶지 않다. 전기세도 아깝지만, 애당초 축축한 음식물 쓰레기들이 모여있다는 사실이 비위 상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가스레인지 주변에 기름이 튀는 것이 싫다.

기름이 튀고, 음식물이 튀는 것이 싫다. 눈에 바로 띄지 않아 방치된 것을 며칠 후에 발견하는 것은 더 싫다. 일산화탄소가 나오는 것도 싫다. 음식 조리 시 냄새와 수증기가 나오는 것도 싫다. 만일 요리를 하더라도 원팬 요리를 뚜껑을 닫고 한다. 준비과정에서 이것저것 그릇에 담고 뒤섞어야 하는 것은 싫다. 그릇만이면 차라리 낫지, 비닐봉지 안에 기름기 있는 음식이 들어간 경우, 그 비닐봉지를 세제 물에 헹구어서 뒤집어서 말린 다음에 버려야 하는데, 어휴.


부스러기에 민감하다.

집에서 조그마한 벌레, 개미 같은 벌레가 기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몇 번 목격한 적이 있는데, 언제나 내가 흘린 빵 부스러기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평소에는 안 보이다가도 부스러기가 한 톨이라도 있으면 어찌 알고 나타나는지. 그래서, 부스러기가 나올 수 있는 음식은 최대한 자제한다. 썰어야 하는데 부스러기가 많이 나올 것 같은 빵은 구매하지 않는다. 과자는 넓은 접시에 담은 후 접시를 받치고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하지만 건강식을 먹고 싶고 지구를 아끼고 싶다.

매 끼니를 사 먹기에는 병원에서 금지한 것이 어찌나 많은지.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는데 이제 밀가루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붉은 고기, 설탕, 나트륨, 유제품 역시 피하려고 한다. 축산업의 실태를 보면 고기와 유제품을 먹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다. 탄소발자국은 물론이요 생명을 대하는 방식이 윤리적이지 않으니. 그래 먹지 말자, 건강에도 안 좋다는데.

음식에 간은 거의 하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계량하기도 번거롭고 사실은 집에 설탕, 간장이 없다. 없이도 십 수년 잘 살아왔으니 굳이 사고 싶지 않다. 내가 만든 음식이 꼭 맛있을 필요는 없지. 좋은 재료를 사서 재료의 맛을 느끼면 되고, 전문가의 요리 기법이 적용된 음식은 나가서 사 먹으면 되니까.

평생 채소를 싫어했는데, 이제 야채를 억지로라도 많이 먹으려고 한다. 먹어야만 한다고 한다. 푸성귀를 먹지 않으면 암에 걸리고 치매가 오고, 하, 아무튼 무서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한다. 어른들이 풀을 먹으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손 안 가는, 뚝딱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들이 내 기준에서는 아주 번거롭기만 하다. 기름을 저렇게 많이 쓰네, 칼과 도마를 쓰네, 물에 젖은 야채를 채 썰면 여기저기 달라붙은 거 정리하기 번거로울 텐데, 설거지할게 저렇게 많다니, 갖은양념 재료를 다 집에 구비해 놓고 산다니!


가사 노동에 들어가는 시간을 최소로 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나를 대접하고 싶다. 그럭저럭 먹을만하면서, 건강에 좋은, 전자레인지만 사용한, 음식물 쓰레기가 최소로 나오는, 손질할 것이 거의 없는, 그런 식생활을 탐구해 본다. 당신도 나와 같다면, 우리 함께 힘을 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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