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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Jul 01. 2024

우연히 만난 천사

2년 전에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에 며칠 지내다 온 적이 있다. 함께 묵던 손님 중에 나 보다 세 살 어린 친절하고 유쾌한 아가씨가 있었다. 까무잡잡 윤이 나고 건강한 피부결에 허리까지 닿을 듯한 긴 생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나 보다 세 살 밖에 어리지 않지만 결혼을 안 한 아가씨라는 이유로 13살 정도 어려 보이는 듯 한 라이프 스타일과 표정. 모든 게 반짝반짝 빛났다. 게스트 하우스 사장 언니가 아끼는 동생 정도로 인사하고 그렇게 각자 다른 일정으로 육지로 올라왔다. 딸아이와 재밌게 놀아준 영상 하나 덕분에 SNS친구가 되어 창문 너머로 인사하며 가끔 하트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얼마큼 지났을까. 작년에 남편이 백혈병 재발로 여러 차례 응급실에 입원을 했는데 응급실로 밥 한 끼 같이 먹겠다고 동생이 찾아와 줬다. 남편이 치료받는 병원에서 동생의 어머니도 항암 치료 하다 2년 전에 돌아가셨단다. 같은 병원에서 울고 짜는 내가 남일 같지 않았던 것. 병원 구내식당에서 들은 동생 이야기는 브레이크 고장으로 내달리는 내 마음에 안전장치가 되어 주었다. 동생 아버님은 고등학교 때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최근에 그렇게 돌아가셨다는데.. 돌아가 안길 부모가 없는 사람이 이렇게 단단하고 따스하고 사랑이 넘칠 수 있는가가 충격이었다. 남편이 숨을 거두자마자 동생한테 연락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장례 마치고 알게 됐다. 동생이 그날 밤 찾아와 발인까지 내 곁에서 먹고 자며 혼자 빈소를 지키던 내게 가족이 되어주었다. 잊을 수 없는 기억과 느낌이다. 오랜 인연도 아니고 깊은 관계도 아닐 적에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사랑을 받았다. 남편을 상실한 아픔과 오랜 병투병에 지친 마음과 어설픈 육아에서 오는 모든 자괴감에 대해서 동생이 “언니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꽉 찼던 감정들이 사그러 든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는 거지. 화려한 위로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는 한마디를 무심한 듯 힘입게 던지는 동생의 삶을 존경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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