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를 붙여주기엔 내가 한자와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름을 대신해서 붙여줄 뜻있는 의미 있는 한자에 무척이나 무지 하는구나. 를 깨닫는 순간이다. 20대 때 어떤 모임에서 내가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는지?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다. 신기한 건 그 자리에 모두가 그런 이름이 있었다는 것. 이름은 나의 부모나 조부모 가까운 어른들이 아이가 잘 살아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뜻을 담아지어 주시고 태어나자마자 받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평생 들어야 하는 사람이 이름을 고르거나 고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내가 원했던 이름은 열매였다. 성이랑 어울리진 않지만, 그냥 이름으로만 불렸을 때 그렇게 불리고 싶었다. 열매가 열리는 과정이 아름답다 느꼈기 때문이다. 열매 하나 나무에 열릴 려면 씨가 땅에 심겨 썩어야 하고 움이 뜨고 싹이 나서 아래로 위로 자라야겠지. 몇 계절이 걸릴지 모르겠다. 모든 계절을 이겨내면 꽃을 피우고 힘겹게 핀 꽃 조자도 떨어져야 열매가 열리는데, 그 열매도 나무 것이 아니라 나무 곁에 찾아온 이들에게 기쁨이 되어준다. 나무의 일생이 꼭 예수님 같다고 느꼈다. 하늘로부터 땅에 떨어져서 창조주가 인간의 몸으로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신의 입장에서는 썩는 일 아닌가. 살면서의 모든 사역도 사람을 위했고, 죽고 다시 산 것도 자신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의 모든 삶이 그가 다시 오길 기다리는 모두에게 열매가 되어 값 없이 얻은 구원이 되어 주었다. 내 작은 삶 예수처럼 살겠다라고 고백 하기엔 나는 너무 나를 위해서만 살고 있지만, 예수의 열매를 먹고 살아난 게 나라는 존재라는 걸 잊고 살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내게 내가 별명을 준다면 ‘열매’라고 주고 싶다. 자꾸 불려지고 기억하다 보면 비슷하게 라도 흉내 라도 내며 살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