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꼰무원들
저는 공무원 7년 차입니다. 7년 전 라테~때는 공무원 시험이 인기가 많았거든요.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하여 야심 차게 입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시작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직장탈출을 꿈꾸며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죠. 세월이 지나면 조직 생활도 적응이 될 거로 생각했는데 7년이 지나도 적응 못했네요^^
제가 공무원조직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놀랐던 건 저보다 최소 25년은 나이가 많은 아버지뻘 상사(팀장)들이었어요. 책상이 너무 깨끗해서 놀랐습니다. 일을 해야 책상에 책이라도 있을 텐데 일을 안 하시는 거죠. 물론 요즘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적어도 서울에 있는 공무원들은 팀장이라고 일을 안 하지는 않습니다.(조금만 하죠. 그게 어딥니까!) 책상이 깨끗한 상사들은 적어진 것 같아요. 오늘은 그동안 저를 거쳐 간(?) 상사들의 유형을 몇 가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천사형
사람 좋기로 유명한 유형입니다. 일도 꽤 열심히 하십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하지만 그게 함정입니다. 해야 할 일, 안 해도 될 일, 안 해야 할 일, 하물며 다른 팀 업무까지 모두 가지고 와서 해야 합니다. 다른 팀에서는 이런 분을 천사라고 부릅니다.
'팀장님, 굳이 이 일은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
'으이그. 그래도 해야지. 안 하면 찝찝하잖아.'
고집은 얼마나 센지 어차피 직원말은 안 듣습니다. 이미 답정너.. 직원들의 업무는 점점 가중됩니다. 그래도 사람은 좋으셔서 술도 자주 사주시고, 커피도 사주시고, 빵도 사주시고 직원들을 위하는 마음은 1등입니다.
2) 엄마형
주로 여자팀장님께 나타나는 유형입니다. 직장과 가정에 경계가 없는 분들입니다. 하루 종일 뜨개질만 열심입니다. 골치 아픈 민원인이 오거나 복잡한 업무가 떨어지면 슬그머니 사무실을 나가 자리를 피하는 것이 특징. 회피형이기도 하네요. 얄미울 때도 있지만 직원들한테 따수운 목도리도 짜주시고 엄마처럼 먹을 것도 잘 챙겨주십니다. 엄마팀장님께서 만들어 주신 필통이 아직도 책상 위에 있네요.
3) 바늘형
일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업무를 정확하게 하는 스타일의 상사입니다. 이런 분과 함께 하면 직원은 업무를 많이 배웁니다. 어디서부터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이분의 단점은 어린 직원을 무시하는 마인드와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인격모독적인 언행입니다. 웬만한 여직원은 이 팀장님을 못 견디고 울면서 6개월 만에 뛰쳐나갑니다. '이것밖에 못하냐', '너는 신입보다도 못하냐'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네요. 업무를 배운 만큼 마음에 상처를 크게 남기는 유형입니다. 더 무서운 건 엄마형 팀장님의 남편입니다. 공무원 부부들은 소문의 발상지이기도 하죠.
4) 자유형
퇴직이 3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사입니다. 업무에도, 직원에게도 관심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 중이십니다. 하루 종일 공인중개사, 행정사 등 자격증 공부에 몰두하십니다. 오히려 직원들은 이런 분을 좋아합니다. 인간적으로 괴롭히지도, 업무에 간섭하지도 않고 자유를 주시니까요. 가끔 팀장님의 업무간섭이 그리워서 슬며시 여쭤봐도 '네가 알아서 해~'....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직원이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유형입니다. 직원을 좀 외롭게 하시기는 하네요.
이 외에도 다양한 분들이 많은데, 더 쓰면 공무원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질 것 같아요. 누워서 침 뱉기네요. 좋은 분들도 많고 성실하게 일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분들은 이런 분들입니다. 한 번쯤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상사욕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욕한다고 시원하지는 않지만요. 다음에는 직장에서 좀 더 긍정적인 면을 관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