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2)
밤에 자려고 누우면,
위가 내장 전체를 덮는 느낌이 들어
다시 맞이한 제주의 아침은 쾌청했다.
가라앉은 우리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하늘은 높았고, 그 맑음 덕분에 우리는 아주 조금씩 생기를 되찾았다.
짐을 챙겨 흰색 코나에 올랐다.
산굼부리의 푸른 하늘과 은빛 억새 아래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느 관광객처럼 입꼬리를 끌어올려 환하게 웃어 보였다.
예쁘게 나왔는지 궁금해 바로 확인한 사진 속에는, 도드라진 가발과 평범한 여행객을 흉내 낸 억지웃음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는 직감했다. 이 사진을 다시는 꺼내 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 허망한 기분 때문이었을까.
바다를 보기 위해 들른 카페에서 H는 유독 예민해졌다.
매장용 컵에 담긴 음료를 두고 기어코 일회용 컵을 요구하는 H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짓다 결국 요구를 들어주었다.
타인에게는 그저 까다로운 손님의 고집으로 보였겠지만, 나는 안다. 그 예민함은 마지막 생명줄을 붙드는 본능이었다는 것을.
나는 누구 편도 들지 못하고, 그저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예약 착오로 원치 않게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야 했다.
낮 동안 우리를 지탱해 주던 안간힘을 내려놓자, 암환자의 병색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때는 사회의 일원으로 각자의 자리를 당당히 지키던 두 사람이, 이제는 생명을 저당 잡힌 채 서로의 초라함을 비추고 있던 밤.
“언니, 우리 참 꼴이 말이 아니네.”
그녀의 한숨 섞인 쓴웃음에 나는 아무 말도 보태지 못했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H는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미혼의 삶에 대한 회한, 아픈 손가락인 여동생, 그리고 가족 간의 애증까지.
오랜 친분 속에서도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그녀의 단정한 사회적 외양뿐이었다. 그녀의 내면에는 세상과 맞서 싸워온, 여리고 서툰 아이가 울고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모든 체력을 소진한 H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위가 내장 전체를 덮는 느낌이 들어. 언니는 아마 모를 거야.”
나는 정말로 그 감각을 알지 못해 그저 눈만 껌벅거렸다. 어떤 위로의 말도 그 고통의 무게를 덜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생에서 함께 나누는 마지막 여행이라는 것을. 잠재우지 못한 삶의 미련이 비행기 안을 무겁게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