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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 Aug 22. 2024

석모도 가는 길

by simjae

 #석모도 가는 길  

        

사진_보문사 가는 산길

 새벽부터 눈이 내리더니 아침 해가 뜨면서 하늘빛이 맑아졌다. 길나서는 마음이 따숩다. 신촌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시 외포리까지는 버스로 환승하고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로 들어 가는 배를 탄다. 

 멀리 석모도가 보이고 바다는 아침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석모도까지는 뱃길 10여분도 채 못 된다. 특유의 배 가솔린 내음에 속이 미식거리긴 하지만 바다 위에 떠 있다는 건 가슴을 확 트이게도, 설레게도 한다. 

 배를 따라 갈매기들은 선상의 길손들이 뿌리는 새우깡을 낚아채느라 공중 유희를 부리고 있다. 묘기가 대단하다. 

     갈매기들은 그렇게 안이하게 제 몸을 살찌우고, 선상의 길손들은 갈매기들을 줄줄이 거느리며 바다를 건너간다. 

사진_뱃길따라 따라다니며 새우깡을 받아먹는 갈매기떼

 석모도에 도착하여 걷는 산길엔 아직 잔설이 남아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가까이 볼을 갖다 대면 눈 덮인 산의 체취가 따사롭게 와 닿을 것 같은 석모도의 아침나절, 나는 마음을 다해 팔을 둥글게 말아 산을 보듬어 본다. 석모도를 껴안고 있는 낙가산은 다정하고 넉넉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도둑질한' 석모도라 할 만큼 섬도, 산도 가히 매력적이다. 

 섬은,

 온 몸에 휘장과 차도르를 두르고 제 몸의 아름다운 능선을 감추고 있었다. 초행길인지라 혹시 출선 시간을 놓칠까봐 서둘러 걸었지만 한 구비씩 돌 때마다 한 겹씩 벗겨지는 낙가산 능선은 관능적이고 편안한 나신이었다.

 섬섬옥수의 어여쁨만이, 고혹적인 애로틱함만이 매력일 수 있겠는가? 내 안으로 찾아 든 편안한 그것이 오히려 오래 각인되는 소중함 아니겠는가. 

 가슴 끓는 열절보다 편안한 ‘등 기댐’ 같은 그것이 세월 좀 살아 본 인생에 맞춤한 산길이라 생각한다.

 3시간여에 걸친 산행은 능선마다 절정이었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는 숨결을 가다듬어야 했다. 

     보문사 뒷산으로 내려오는 길은 굵은 쇠사슬로 통제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장료를 내지 않고 결국 절집으로 든 꼴이 되었다. 이건 우리의 의지가 아닌 산길을 걷다가 만난 산신령의 적선이라 믿는다.

 예약된 횟집에서 차로 마중을 나왔다. 마중 나온 차는 트럭이었다. 그 마을 김영일 선장님의 것이란다. 일행은 깔깔거리며 고물고물 트럭에 옮겨 탔다. 덕분에 오래 기억에 남을 멋진 드라이브까지 하게 되었다.      

     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갯벌이 가만가만 제 살결을 보여주고 있는, 도착한 횟집의 뒤뜰은 온통 바다가 후원이었다. 

 그 후원 갯벌에는 어디에도 떠나지 못한 빈 배 한 척이 묶여 있었다. 삶의 그루터기에 말뚝 박혀 시시때때로 흔들리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자작하니 갯벌을 적시고 있던 바닷물은, 회 한 접시를 비우는 사이 모두 빠져나가고 없었다. 포근한 포구마을에서다.

 막배시간에 맞춰 서둘러 일어섰다. 밖은 가만히 어스름이 내리고 저만큼 바다 위로 지금 마악 해가 떨어지고 있다.      

 저 바다가 붉은 햇덩어리를 다 삼키고 온 몸을 꿈틀 뒤척이는 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싶지만,

 이 섬에 갇혀 밤새 물들어오는 소리 스륵스륵 들으며 귀 활짝 열어놓고 섬과 이야기 하고 싶지만,

 어둠 속을 짐승처럼 어슬렁거리며 갯마을의 구석구석을 뒤져보고 싶지만,     

 서둘러 막배에 올랐다. 

 바다는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2005년)    

 

사진_막배 떠나기 전의 섬을 덮은 놀빛


*현재 석모도 가는 길은 총 1.54km의 석모대교(삼산연륙교)가 2017년에 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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