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멸기
유현숙
생의 가는 허리를 휘어잡는 푸드득 새들 나는 소리 들린다
대추알들 붉게 익고
주둥이 흰 새들 날아와 대추알을 쪼던
새들의 눈빛이 대춧빛으로 익던 때가 있었다
기대어 서면 내가 대추나무이던 때가
대추나무 밑동을 걷어차며 또 내가 걷어차이던 때가
지났다
날 저물고 내 안의 빈 마당에 바람 불고
지금은 밑동만 남은 마당 귀퉁이에 돌아와서 후두둑 떨어지는
대추알을 줍는다
왜 나는 몸이 대춧빛으로 익을 때마다 날선 톱날이 되어
대추나무 허리를 잘라야 했던지
새들은 떼 지어 날아오르고 마침내 까마득한 하늘로
점멸했던 것인지
내 안에 드리워진 대추나무 그림자가 대추 잎새보다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