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치를 길이라든가 각도 또는 전류라고 하는 연속된 물리량으로 나타내는 일. 예를 들면, 글자판에 바늘로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 수은주의 길이로 온도를 나타내는 온도계 따위가 있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아날로그의 느림과 연속성이 좋다. 아니, 편하다. 젊은이들에게 빠른 디지털이 친숙하고 익숙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직접 물성과 질감을 느끼고 경험하며 기쁘게 시간을 허비하면서 감각하는 아날로그에 더 끌린다. 오타 만발의 빠른 타이핑보다는 느리지만 사각거리는 연필의 소리와 깊이, 냄새가 매력 있다. 깜빡거리다가 순식간에 분과 시를 가르는 디지털시계보다 재깍거리며 시분초를 열심히 운반하는 아날로그시계가 멋스럽다. 이메일과 카톡으로 빠르게 보내지는 메시지보다 편지에 꾹꾹 눌러 담긴 마음을 받는 것이 더 큰 감동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나에게 딱 맞는 느린 감성이 아날로그인 듯하다. 그래서, 영어 필사가 좋았나 보다. 그리고, 좋은 것을 나누려고 책을 출간했다. 그런데, 그 책으로 강의가 연결되었다. 전북 영어과 1정 연수를 위해 전주로 향한다. '한옥 마을 전주'라는 유명세를 증명해 주듯이 KTX 전주역은 한옥지붕을 두르고 있다. 영어과 1정 연수 출강 중 가장 긴 여정이다. 충청도까지였던 한계선이 남쪽으로 더 뻗었다.
전주의 환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젊은 영어 선생님들이 필사 책을 들고 계셨다. 먼 여정이었던 만큼, 저자로서의 강의인만큼, 나눌 이야기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시간과 공을 들였던 첫 번째 강의 끝에 한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선생님, 지금까지 김태현 선생님 강의랑 선생님 강의가 제일 좋았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혼자만의 팬심) 김태현 선생님의 강의 옆에 나를 언급해 주시다니 가문의 영광이다.
두 번째 강의를 앞둔 쉬는 시간에 연구사님께서 말씀하신다.
"선생님, 선생님을 작년부터 보고 싶어 하셨던 분이 계셔요. 제가 그분 추천으로 올해 선생님께 강의 의뢰드린 거예요. 선생님 책 들고 사인받으러 오실 거예요. 군산 OOO 센터장님이세요."
헉,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기관장님께서 일반 영어 교사를 보고 싶어 하시다니,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조우에 몸 둘 바를 몰라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온화한 미소의 센터장님은 강의 내내 교실에 앉아계셨고 KTX역까지 태워 주셨다. 감히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다 누렸다.센터장님이 풀어주신 스토리는 이렇다.
작년에 책을 통해 강의 섭외를 하려고 연락처를 알고 싶었는데, 출판사 사이트를 뒤져도 알 수 없어서 경기도 교사라는 정보만 가지고 경기도에 있는 친구에게 경기교육통합메신저를 통해 이름을 검색하여 학교 연락처를 알아내셨다. 그런데, 학교에서 육아 휴직자라 강의할 수 없다는 결실 없는 답을 듣고 수강생들에게 책만 사주고 끝을 냈다. 올해, 새로 발령을 받아 군산으로 가시면서 후임자에게 꼭 다시 강의를 섭외하라고 요청하셨다. 그런데 학교 연락처를 잃어버리셔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셨다.
거리가 멀어 출강을 주저했는데, 군산에서 전주까지 1시간 거리를 달려오신 분을 만나는 영광을 누리다니. 아, 이런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주신 환대란...
동시에 생각지 못했던 불찰을 돌아보게 되었다. 출간된 책에 그 흔한 인스타, 블로그, 이메일 주소 하나 넣지 않았다니. 어차피 만들어 둔 계정인데 전무한 저자 소통 채널로 인해 아날로그적 추적이라는 이례적인 수고를 안겨 드렸구나. 아날로그적 환대를 받은 만큼이나 부채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날로그의 반격'이 아닌, '디지털의 반격'을 받았다.
아날로그의 감성과 디지털의 효율 사이에서 어떻게 접점을 찾아야 할까? 아날로그와 디지털 어느 중간쯤에 낀 세대로 살아가는 것이 개인적으로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아니, 살짝 피곤하다는 것이 맞겠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졌던 것도 아니었고, 얼리 어댑터로 발 빠르게 시대의 변화에 편입되는 빠릿빠릿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뼛속까지 찐 아날로그 세대로 예우받지도 못하는 처지이다 보니 그저 급속한 시대적 흐름에 떠밀리지만 않을 정도, 딱 그만큼만의 보폭이 전부였다. 즉, 아날로그와 디지털, 두 세계 모두를 이해하지만, 다리 한쪽씩을 걸치고 있을 뿐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는 어정쩡한 상태가 바로 나였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한 시대이지만 평균을 겨우 넘나드는 정도의 관심과 실력으로 개인적 삶의 영역에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페북, 인스타, 블로그 등 SNS의 세계에 발 빠르게 편속되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이 편했고 큰 문제의식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 전주행 여정을 통해 나의 안일한 편익(?)으로 초래될 수 있는 타인의 불편과 이로 인한 부채감을 마주했다. 그동안 신세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신기술을 익히는 피로도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아날로그 정신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지로 더딘 시대 적응력을 덮으려고 애썼던 건 아닌지 깊이 더듬어 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