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오지 여행의 기억(3)

이색체험

by 위혜정

4. 무안한 거리 공연


마을 인심이 고마워 답례로 한국에서 준비해 간 공연을 시작한다. 마술 공연도 하고 워십 댄스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속으로 '성공이다!'하고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막상 공연이 끝나고 나니 무거운 적막감이 흐른다. 현지인들은 멀뚱멀뚱 바라볼 뿐 박수를 칠 줄 모른다. 공연 문화에 노출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환호하는 법, 박수 세례로 화답하는 법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 무안하기 짝이 없다. 땀 흘려 공연을 하고도 고요한 묵묵부답, 무반응이 마치 혼자 침 튀기며 수업하고 나온 뒤의 허탈감 같다. "다른 걸 해볼까?" 하며 팀원들과 무안함을 무마하려 다음 공연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매 회차가 끝날 때마다 더 큰 쓰나미급 적막감이 몰려온다. '다시는 하나 봐라...' 하는 공허한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공연을 마치고 2시간을 걸어 다음 마을에 도착했더니 이미 소문이 쫙 퍼져있다. 마을 사람들은 아예 판을 깔고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공연을 해달라고 먼저 요청한다. 깜짝 놀라서 물었다.


- 어떻게 알았어요?

- 저 마을에서 봤어요. 또 보려고 왔어요.

- 저 마을에 사는 친구가 얘기해 줬어요.


허탈했던 기억을 모두 접고 힘을 내어 다시 공연을 한다. 물론, 그 끝이 고약하긴 마찬가지다. 변함없이 무대 위의 노력이 무색하게 끝없는 적막감이 흐른다. 아, 이것이 이들의 문화구나. 흥에 겨워 함께 덩실거리고 환호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이고.

서로에게 익숙한 문화를 서운해하지 말고 그냥 존중하자.




4. 풍선의 인기


마을 아이들에게 풍성 아트는 인기 최고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국에서 배워간 칼, 강아지, 왕관, 팔찌 등을 묵었던 방 안에서 제작하기 시작한다. 우선 방을 내어준 가정집의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준다. 알록달록 풍선을 받고 해맑은 미소로 다음 작품이 어떻게 탄생되나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 여자 아이, 남자아이들 너나 할 것 없이 풍선 팔찌가 제일 인기다. 마을 아주머니, 어르신들도 그 팔찌를 받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어느새 방 문 앞은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우리에겐 별 것도 아닌데 그들에게는 평생 처음 보는 진귀한 물건이었다, 풍선이.




6. 미스터리 폐가


8월이면 네팔의 우기다. 걷다 보면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미리 준비해 온 판초를 뒤집어쓰고 걷는다. 몇 시간째 마을이 나오지 않아서 밥도 못 먹고 쉬지도 못하고 몸이 축축 쳐진다. 이때, 눈앞에 폐가가 보였다.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공간인 양 집 앞에 테이블과 의자가 세팅되어 있다. 오아시스 같은 풍경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뛰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우선,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른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서 다섯 개의 발가락 하나하나에 밴드를 돌돌 말아 붙이는 이도 있다. 밥도 못 먹어 출출했기에 배낭에서 비상식량을 꺼내든다. 간식은 고추참치, 김, 라면이다. 라면을 쪼개어 고추 참치에 넣고 비빈 후 김에 싸서 서로의 입에 넣어준다. 얼마나 꿀맛이던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후다닥 끝낸다. 선교사님께서 산길을 가다 보면 이런 폐가들이 많이 보인다고 말씀하신다.



단비 같은 휴식을 뒤로하고 30분을 더 걸어 조그만 산골 마을에 이르렀다. 다행히 2평 남짓의 허름한 방을 얻었다. 그런데 최악이다. 다양한 벌레들의 소굴이다. 각종 다리 많은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소리와 함께 밤을 지내야 했다. 긴팔 옷으로 몸을 감싸고 양말, 마스크, 선글라스까지 꺼냈다. 모든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벌레의 침투에 만반의 대비를 한다. 그런데, 머리를 눕히자 피곤 때문에 벌레고 뭐고 깊은 잠으로 곧장 곯아떨어진다.




다음날 아침, 산골 마을에 현지 교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기 위해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전날 쉬어갔던 폐가가 보인다. 앗, 그곳에서 밥 짓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다. 네팔의 여인이 마당에서 빨래까지 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폐가가 아닌, 가정집이다. 우리가 쉬어갔던 텅 빈 티이블과 의자에는 조그마한 아이가 앉아있다. 비가 상당히 내렸었는데, 어제 가족 전체가 어디에서 비를 피했던 걸까? 그때 그 시간, 우리를 위해 오랜 시간 집을 비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한 미스터리다. 소름이 쫙 돋았다. 천사가 내려와 우리의 쉼을 예비한 것일까?





바로 근처라던 현지 교회는 1시간 반이 지나서야 시야에 들어왔다. 산골 마을의 시간 개념도. '근처'란 적어도 1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한 사람이 나타나 우리를 보더니, 목사님께 연락을 하겠다고 한다. 산골 마을의 연락 수단을 어떨까? 궁금하다. 뛰어가는 걸까? 불을 피우는 걸까? 곧이어 큰 고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 사람이 이곳에서 소리치면 저 편에 서있던 사람이 듣고 다른 편에 고함을 지른다. 그렇게 외부인의 방문이 목사님의 귀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연락 수단은 바로, 구성진 육성이었다. 원시적인(?) 구수함이 물씬 풍긴다.


<현지 교회 방문>


현지 교회 목사님은 산골 마을 출신이다. 어렸을 때 마을을 걷다가 땅에 떨어진 전도지를 주워 들었단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놀라운 간증이다.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기적의 찰나가 되었다. 우리의 땅밟기와 전도지 배포가 의미 없는 고됨이 아니라는 것을 토닥여 주는 말씀이었다. 이후로 계속되는 여정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네팔 산속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보이지 않을 뿐 지속되고 있는 복음의 역사가 마음을 찡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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