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환경 리셋
절실한 마음을 담아 글쓰기 루틴을 잡았다면 글을 쓸 수 있는 초석을 세운 셈입니다. 다음으로 초석이 흔들리지 않도록 일상의 표면 아래로 깊이 눌러주어야 할 차례입니다. 글쓰기를 꾸준히 해나가는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꾸준히 하는 일이 바로 당신이다. 탁월함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고 습관으로 이루어진다.”
글력은‘툭’하고 우연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습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래요. 그 중요한 습관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사실, 누구나 쉽게 결심할 수 있지만 독자적인 힘으로만은 지속하기 어려운 영역이 아닐까 싶어요. 자기계발서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인‘21일 법칙’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맥스웰 몰츠는 습관 형성을 위해 최소 21일간의 의식적 반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어요. 뇌에 새로운 생각 회로(시냅스)를 만들어야 목표한 행동이 자연스레 몸에 들러붙게 된다는 말이지요. 물론, 21일은 뇌에 각인되는 최소의 시간이며 습관으로 정착되려면 66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습관 형성을 위해 걸리는 시간은 개인차나 목표 행동의 종류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핵심은 지속의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물리적인 글쓰기 환경 설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들이 필수적입니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경제적인 기반과 함께 오롯이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일컫는‘자기만의 방’은 정신적 자유를 위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글쓰기 작업실이라는 거창한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색과 글쓰기를 방해받는 나만의 장소가 되겠지요. 섬세한 필력으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그녀도 글 쓰는 공간을 따로 떼어둘 필요를 강조하고 있네요. 하물며 아마추어 같은 우리는 그 뒤꽁무니를 쫓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변화에 대한 갈증이 커서 루틴이 세팅되기 전까지 기상을 하면 무조건 서재의 책상 앞으로 몸을 이끌었습니다. 습관 형성을 위한 의식이기도 했고 조건화된 장소가 주는 심리적 압박 효과를 노린 것이었어요. 몽롱한 상태에서 잠을 깨고, 둘러싸인 책과 함께 뭔가를 끄적일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강제한 셈이니까요. 뭘 하든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인 후, 앉아 있는 시간을 고정 상수로 박아 두면 책을 꺼내 읽든 글을 쓰든 문자를 매개로 한 활동이 따라옵니다. 무의식중에 ‘글쓰기’라고 입력한 내적 프로그래밍이 활성화되는 것이지요. 공부하는 습관을 잡을 때 책상 앞에 앉아 있는‘엉덩이의 힘’을 기르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학습패턴이 잡히지 않은 학생들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합니다. 책을 펼쳐두지 않더라도, 주의력과 집중력이 잦은 외출을 하더라도 책상에서 하는 무언가에 시동을 걸 수 있도록‘좌정’의 기본기를 갖추는 게 우선입니다.
물리적 환경 설정의 측면에서 이번에는 글을 쓰는 플랫폼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해요. ‘축적의 힘’이라는 동력을 느낄 수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활용했던 인터넷 툴은‘블로그’였어요. 코로나 시기에 많은 이들의 숨통을 틔워주었던 온라인 매체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 당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비대면 소통이 크게 활성화되면서 블로그 인증 모임이 우후죽순 많이 생겨나기도 했었지요.
시절의 흐름을 타고, 개설만 해놓고 휴면 중이었던 블로그 계정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블로그 이웃들과 교류할 목적보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차곡차곡 글을 쌓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하루를 거르면 왠지 모를 찜찜함 때문에 기어이 글을 쓰고 넘어가는 기분 좋은 관성이 생겨나더라고요. 이웃도 많지 않아 초라하기 그지없는 블로그지만 광활한 인터넷의 어느 틈바구니 끼어서 나의 역사가 기록된다는 작은 존재감에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꼭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좋아요. 노션, 브런치, 개인 문서함, 구글 드라이브 등 디지털 도구뿐만 아니라 다이어리, 노트, 메모지 등 아날로그 도구까지 선택적으로 활용하셔서 글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기록, 축적되어 쌓이는 과정을 보면 그 자체로 기분 좋은 동력이 됩니다.
저에게 필사 노트 역시 글쓰기 환경을 설정하는 좋은 도구였어요. 새로운 루틴을 ‘환기’해주는 물건이었거든요. 한 권 한 권 늘어가는 필사 노트 역시‘축적의 힘’을 발휘합니다. 필사의 방법은 온라인 타이핑 방식, 지면(紙面)에 옮겨적는 아날로그 방식, 태블릿에 필기하는 디지털 방식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에게 맞게 선택을 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빠져 흥미로운 연구 하나 소개해 드릴게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와 UCLA가 공동연구로 진행한‘손글씨’와‘타이핑’의 효과에 대한 논문인데요. 컴퓨터 앞에서 정보를 단순히 옮기는 타이핑 보다 내용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필기(손글씨)가 깊은 인지 처리를 유발하기 때문에 기억이 오래 남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은 시각, 촉각, 운동 감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합하여 뇌의 여러 영역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정보 처리의 질과 기억 재생의 수준을 높일 수가 있다고 해요.
모든 연구가 그러하듯 여전히 한계점이 존재하지만 필요한 부분만 추출‧적용해 볼까요? 텍스트를 단순히 베껴서 쓰는 행위 자체, 즉 필사의 힐링 효과는 분명해요. 여기서 충분히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 쓰기라는 최종 단계로 가기 위한 성장의 벽돌을 쌓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베끼고 타이핑하는 단순 노동, 즉 필사의 밑돌 위에 내용을 이해하고 요약하고 재구성하는 벽돌을 더 얹어보는 건 어떨까요? 뒤돌아보니, 영어 필사를 통해 글쓰기를 하고 꾸준한 글쓰기가 책 쓰기로 연결된 일련의 과정이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저 했을 뿐인데 자연스레 종착지에 닿는 여정이었습니다. 평범한 제가 해냈다면, 여러분도 이 과정을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물리적 환경에 이어 이번에는 심리적 환경으로 넘어가 볼게요. 외적 작업 환경이 모두 완벽하게 갖추어졌더라도 글쓰기로 넘어가지 못하는 고약한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글쓰기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대개 이런 착각을 합니다. 작가들의 일필휘지는 타고난 재능이라고. 볼품없는 나의 글을 계속 쓰는 것은 그야말로 무용한 일이라고. 과연 그럴까요? 『부지런한 사랑』에서 이슬아 작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나는 글쓰기만큼 재능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 반복하면 거의 무조건 나아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꾸준하지 않으면 재능도 소용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글쓰기를 반복할 수 있으며, 이는 재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꾸준함이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이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안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다 보면 잘하게 됩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쓰는‘손이 달구어진 사람의 글’은 결국 탄탄한 문장을 써낸다는 말도 건네줍니다. 잘하다 보면 신나게 더 많이 즐기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겠지요. 글쓰기를 좋아하시나요? 선택할 수 없는 재능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선택할 수 있는 꾸준함과 손잡으세요. 그리고 이것만 기억하세요. 남들은 나만큼 내가 쓴 글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나만큼이나 내 글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은 사람도 없다는 사실까지도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다른 사람의 연애 상담은 기가 막히게 잘해주면서 정작 자신의 사랑 문제는 객관적이지 못해 문제해결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괜한 자기 검열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넘을 수 있는 허들의 높이를 타인에게 허락하는 만큼 나에게도 너그러이 낮춰주는 건 어떨까요? 글 쓰는 존재 자체로서 토닥여 주는 것이죠. 스스로를 닦달하거나 몰아세우지 마세요. 생각보다 글 쓰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우리, 꾸준함의 재능만 한번 연마해 보자고요.
♠ 꾸준하게 글을 쓰기 위한 환경 세팅 ♠
1. 글쓰기를 위한 물리적 환경 설정의 첫 번째, 나만의 장소를 마련하세요. ‘나만의 방’을 어디로 정하시겠어요?
2. 글쓰기를 위한 물리적 환경 설정의 두 번째, 어떤 플랫폼을 사용하여 글을 쓰시겠 어요?
3. 글쓰기를 위한 심리적 환경 설정, 글 쓰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어떻게 설정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