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영어 듣기 실력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을 해주면 좋을까요? 외국어 학습 능력은 크게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네 가지 영역으로 나뉩니다. 각 영역에 해당하는 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소위‘양(量) 치기’라고 불리는 집중훈련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들어가기 전, 잘 듣기 위해서는 우선 많이 들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말해줍니다. 말하기를 잘하려면 말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답이 되겠고요. 이러한 정석에 따라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쓰면 된다는 결론이 나오겠지요. 그런데 왜 글을 많이 쓰면 되지 굳이 책까지 읽으라고 할까요?
듣기와 말하기는 소리로 소통하는 능력입니다. 반면, 읽기와 쓰기는 문자를 매개로 한 상호작용이고요. 문자가 없던 시대에도 인류는 말하기와 듣기를 통해 생존을 위한 생활 소통을 했습니다. 문자가 탄생하면서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이 수반되었고요. 문화유산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쉽지 않은 역사적 업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문자 언어는 자연스러운 습득(acquisition) 이상의 학습(learning)과 훈련(training)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영어 지문 독해’라는 말을 자주 들어보셨을 거예요.‘독해(讀解)’란 영어 텍스트를‘읽고 해석’하는 과정을 포함하는 용어예요.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매개로 한 읽기 역시 눈으로 입력되는 문자 자극을 단순 변환하는 디코딩(decoding)이 아닙니다. 이해와 해석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는 복합적이면서도 능동적인 인지 과정이지요. 읽기를 잘하려면 해석을 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규범과 다양한 지식을 포함한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직접 경험만으로 지식을 쌓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많이 읽어야 글을 읽어내는 능력이 쌓이게 되는 것이고요.
책을 읽다 보면 배경지식뿐만 아니라, 글을 잘 쓰기 위해 다양한 역량이 길러집니다. 어휘력, 문장력, 성찰과 사유를 통한 깊은 사고력, 다양한 시각, 글쓰기 재료 발견과 영감 자극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뇌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고도의 지적 능력이 계발되는 것이지요. 글을 쓰기 위한 기초체력이 길러진다고 해야 할까요. 즉, 독서는 글쓰기와 별개로 이루어지는 독립적인 과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글쓰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견인해 주는 필수 활동입니다.
『작가의 루틴』에서 김중혁 작가는 책 읽기와 글쓰기는 언제나 하는 것이며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펼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쓴다고 합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할 정도로 활자 중독이라고 자신을 표현하더라고요. 이미 수준급인 작가들도 이럴 진데 아마추어인 우리가 독서를 하지 않는다니 말이 안 되겠지요.
혹시‘인지 부조화’라는 심리학 이론을 들어보셨나요?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부조화가 일어나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변화에 대한 강한 동기를 갖게 된다는 이론이에요. 이를 외국어 학습에 접목한 것이 출력 가설(Output Hypothesis)입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표현하지 못하는 능력의 차이, 이에 따른 심리적 불편함을 마주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내가 이걸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모른다고?’라는 인식이 학습에 긍정적인 드라이브를 걸게 된다는 것이지요. 입력(Input)이 출력(Output)되지 않는 상태를 인식하게 되는 충격의 순간을 통해서 입력의 과정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게 되고 학습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입력을 읽기, 출력을 글쓰기로 치환해 볼까요? 글쓰기를 하려고 하는데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명징하게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때, 독서를 하다 보면 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내용을 그림으로 찍어내듯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한 문장들을 만나게 됩니다. 글쓰기를 학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지요.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작가의 필력을 통해 발견하게 되고 그 차이를 인식한 상태에서 독서를 하게 되면 그물망처럼 딸려오는 표현력을 연마할 수 있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는 시선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글의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글의 창작자이자 생산자로서 바라보는 태도이지요. 이 부분은 나중에 조금 더 상세히 다루도록 할게요.
물론, 작가들의 글에 감탄하다가 괜한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어요. 독서를 통해 감탄과 절망이 반반씩 굴러들어 옵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허접한 나의 근력을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걸 아셔야 합니다. 작가는 평생 글을 써 온 사람이에요.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우리와 그의 글을 견주는 것 자체가 작가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노릇 아닐까요? 도둑놈 심보를 버려야 합니다. 그동안 작가들이 글쓰기에 투자한 시간, 재정, 노력에 비하면 우린 아직 갈 길이 멀잖아요. 책 한 권은 수년간 흘린 땀방울입니다. 누군가의 글을 질투할 수는 있어요. 대신, 공평하게 결과물만이 아닌 과정까지 모두 질투해야 합니다. 나의 손이 그들만큼 달구어지지 않았다면 질투는‘질료’가 됩니다.
동시에, 어쭙잖은 나의 글에 실망감도 찾아옵니다. 실망에서 머물지 말고 ‘실속’을 챙겨 ‘실력’을 쌓는 건 어떨까요? 내세울 만한 것 없는 내 글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파수를 예민하게 키면 됩니다. 작가의 책을 펼치고 편하게 앉아서 아름답게 직조해 놓은 활자 예술을 즐기는 것이지요. 작가의 기나긴 글쓰기 인생을 단 몇 시간 만에 흡수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노 나는 장사 아닐까 싶어요.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기도 하고요. 효율성이나 유익성 측면에서 훨씬 득을 가져다주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챙길 것만 잘 챙겨서 꾸준한 글쓰기로‘실천’하면 됩니다.
독서의 또 다른 좋은 점은‘생각 자극’입니다. 읽을수록 쓸 것이 생각난다고 해야 할까요? 독서 차제가 글감(感)을 익히고 또 탐색하는 과정이 되거든요. 책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은 욕구도 같이 일어납니다. 인간은 표현하고 싶고, 무엇인가를 창작하고 싶은 본성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하잖아요. 나무를 보면 그 열매를 알 수 있다고, 뿌리가 되는 나무(하나님)가 세상을 창조하고 자신의 창조물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면 인간 역시 그의 창의력과 표현 욕구를 품고 있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겠지요. 독서를 통해 생각 우물에서 길어진 각종 아이디어를 나의 글로 데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작가의 생각에 동의, 적용, 반대, 반박, 병합 등 내 생각을 덧씌운 다양한 구성의 글로 말이지요.
문득,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할지 궁금해집니다.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에서 다루고 있는 레드퀸 효과에 대해 소개해 드릴게요. 레드퀸 효과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유명한 작가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의 말에서 유래된 용어예요. 아무리 빨리 뛰어도 주변의 풍경은 그대로인데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이 말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뛰면 겨우 제자리에 머물 뿐, 어디론가 가고 싶다면 두 배 빨리 뛰어야 한다고요. 뛰지 않고 걷다 보면 뒤로 후퇴할 수도 있어요. 레드퀸 효과를 넘어서기 위해서 주인공 홍대리는 끊임없는 성장을 결단하고 100일간 33권의 책 읽기를 시도합니다. 독서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지죠.
석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33권의 책을 읽으려면 하루에 대략 11권, 일주일에 2권을 읽어야 합니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53% 이상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해요. 일주일에 2권이면 말 그대로 엄청난 다독입니다. 이와 더불어 이 책에서는 T형 독서도 함께 제안하는데요, 한 권의 책을 읽고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수평적 독서와 어느 지점에서 작가든 주제든 흥미 분야에서 깊이 파고드는 수직적 독서를 결합한 독서 방법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편식 없이 읽되, 특정 분야에서는 깊은 책 읽기를 권장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의지를 다지기 위해 찰스 버코스키(Charles Bukowski)의 시, “Rolle the dice”에서 나온 인용문을 띄워드릴게요.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제대로 할 것을 다짐해 보아요!
“If you’re going to try, go all the way. Otherwise do not even start(무언가 시작하려거든 끝까지 가라. 안 그럴 거면 시작도 하지 마라).”
♠ 꾸준하게 글을 쓰기 위한 인풋, 독서 ♠
1. 책 읽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봅시다.
2. 일주일에 언제, 얼마만큼의 책을 읽을 것인지 선언해 보세요.
3. 주로 어떤 장르의 책을 읽으시나요? 독서 편식이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