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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Apr 23. 2018

혼자 먹는 밥


오전 10시 30분    


 

몸에 필요한 것들은 그때그때 줘야지 하며 조촐한 밥상을 차렸다. 모처럼 텔레비전도 켰다. 요즘 인기 있는 경찰드라마 재방송중이다. 하필이면, 정말이지 하필이면 장례 장면이 나왔다. 모친상이다. 첫 숟갈을 삼키지도 못하고 울기 시작해서 장면이 바뀔 때 까지 꺽꺽거렸다. 50이 넘어서도 엄마가 내 곁에 없을 거라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한참 울다가 문득 밥 먹다 말고 꺽꺽거리며 우는 나를 누가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춤형 텔레비전처럼 장면이 광고로 바뀌었다. 일상이 지나가고, 희망이 지나가고, 안전이 지나가고, 다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10분 전에 사람을 눈물도가니에 빠트려놓더니 이제는 실실 웃음이 나게 만든다. 피식 웃다가 난 정말 바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속의 사람들을 따라 순식간에 울다 웃다 화내고 안도하는 나. 드라마가 못 됐네. 기복도 어느 정도라야지 무슨 1시간짜리 드라마에 없는 얘기가 없어. 전화벨이 울린다.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통화를 시작한다. 금요일 건넸던 전시기획 예산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데 상세 브리핑이 필요하단다. 약속을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 사이 드라마는 1부를 끝내고 2부를 준비하고 있다. 다시 밥을 먹는다. 반성과 후회, 다짐으로 재구성되는 중년의 사랑을 본다. 그래, 누군가 있어야 하긴 하겠다. 아직 뜨거운 젊음의 객기도 본다. 그래, 그때가 좋은 거다.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니 드라마도 끝이 났다.     


  

오후 1시. 

내 집, 내 밥상 앞이어서 다행이다. 혼자여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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