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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Apr 16. 2016

겨우 함지박 만한 슬픔





참기 위하여

접시를, 컵을, 나를 닦는다.      

뽀득 뽀득 뽀드득      

보기 좋게 부풀어 오른 거품이

함지박만한 설거지통을 채우다

폭삭 꺼져 들어가는 동안

접시 하나에 밥벌이의 비루함을

컵 하나에 늙어감의 서러움을

겨우  

함지박만한 슬픔에도 휘청거리는

이 초라하고 역겨운 허영을      

뽀득 뽀득 뽀드득      

참아 내기 위하여

견디기 위하여

지난 것은 모두 쉬웠고

지난 것은 모두 편했으며

지난 것은 모두

라고       

잊고 살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어설픈 희망에 길들여져서

겨우

함지박만한 슬픔 따위에도

녹록하게 보이는

만만한 나를

기를 쓰고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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