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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Oct 04. 2018

또, 병원


혈관이 약한 나는,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는 나는, 체력이 바닥인 나는, 병원에 자주 오면 안 되는데, 하긴 병원에 자주 와서 좋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어쨌거나 총체적으로 부실한 나는, 최대한 병원을 멀리 해야 한다. 


약물의 길을 열기 위해 찔러대는 주사바늘 횟수만큼의 짜증과 거기서 생겨난 멍 때문에 손등이 욱신거리다 못해 뻣뻣한 경직상태가  되는 시간만큼의 체념이 뒤엉켜 그곳은 그냥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내게 존재한다. 해서 병원에 오면 나는 저절로 수도자가 되고 종교인이 된다. 포기가 쉽고 뻔뻔함에 내공이 생긴다. 뭐, 어쩌라고?


살아보니 그랬었다. 미친 듯이 준비하던 프로젝트의 시작점에서 모든 것이 남의 일로 변하고, 질질 끌고 미루던 결단들이 순식간에 정리되고, 아등바등했던 관계들이 모두 강 건너 불이 되는 경험들. 그래서인가 병원은 내게 끝이기도 하고 시작이기도 하다.


가볍게 내 뒤통수를 쳐서 날 기절시킨 이에게 첫날은 원망뿐이었는데 며칠 지나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삶은 대개 이런 경험들로 단단해지는 거지. 시작 부터 끝까지 말랑하길 소원했으나 그건 어차피 물 건너갔으니 더 단단해지는 쪽을 택한다. 모 아니면 도, all or nothing. 내가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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