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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Jun 16. 2020

감춰진 자화상

때때로 사진이 그림보다 더 그림같다. 


빌레의 한가운데, 움푹 패인 홈에 고립된 수초는

너무 멀리 흘러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채 말라가고 있다. 


기세등등한 전염병을 핑계로 나는 아무렇게나 흐른다.

너무 멀리 가버려도 상관없다 생각하면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고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 외에

나를 붙잡는 것이, 이끄는 것이 없어.

그저 귀찮다 귀찮다 하면서 살고 있다. 


그림자를 통해보니 저런 걸 뿜어내고 있구나, 내가.

외피에 씌워진 말간 웃음은 어쩌고.

너는 내가 아니라며 외면하려다 흠칫 놀란다.

어쩌면 저게 진짜 내가 아닐까 싶어서.  


넌 어쩌다 그곳으로 흘렀니





* 빌레 : [명사] ‘너럭바위’의 방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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