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서 일정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험난했다. 전날 불면의 후유증과 시시때때로 급변하는 날씨가 흡사 광란과도 같은 지경이라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반복, 새벽에야 집에 닿았다. 충청도로 가야했으나 마음을 바꿔 전라도 지명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누군가에게 가겠다고 연락을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싶어 북진을 택했는데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는 망설임이 있었다. 30년 운전 경력에 나름 온갖 날씨 다 겪어봤다 얘기하는데 어제 같은 날씨는 처음이었다. 10시간 가까이 움직이는 동안 도시의 경계를 넘나들 때 마다. 다리를 건너고 터널을 지날 때 마다 날씨가 바뀌었다. 그럭저럭 바뀐 것도 아니다. 급변했다. 덕분에 물이 어떻게 폭탄이 될 수 있나 했던 의문을 말끔히 해소했다. 덜컥 브레이크에 발이 갈 만큼 압박의 수위가 높은 물폭탄도 예닐곱 번 맞았다. 피로감이 극에 달할 때 마다 쉬었는데도 집에 도착하니 젖은 솜뭉치가 되어 쓰러졌다.
아침에 접한 외삼촌의 부고. 2주 전에 뵙고, 요양원에 가시면 다시 오겠노라 손가락 걸어 약속을 하고, 언제나 그렇듯 사람 좋은 웃음으로 배웅해주셨는데, 거동을 못하고 누워 계셨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가실 거란 예상은 안 했는데. 오라고 부르셨는데 그냥 스친 듯 괜히 죄송했다. 날씨는 날씨일 뿐 그럴 리 없다 하면서도.
수완 좋은 외할머니가 쌓아둔 재산 허랑하게 축낸 속없는 사람이란 소리.
귀 얇고 눈 어두워 사기나 당하고 다니는 맹추 같은 사람이란 소리.
모진 맘 가지질 못해서 누구에게 속 시원히 욕도 못 하는 맘 약한 사람이란 소리.
남들에게, 가족들에게 외삼촌은 그런 사람이었다.
허나 내게 그는 다른 사람이다.
밖에서 돌아오면 눈깔사탕 손에 쥐어주고 너만 먹어라 하던 분.
따끈한 부뚜막에 놓여있는 계란을 내가 홀딱 깨먹으면 본인이 먹었노라 해주시던 분.
생선 몸통 발라서 내 밥에 먼저 얹어주시던 분.
화를 내다가도 나만 보면 허허 웃으면서 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분.
자기는 일자무식이라 아무 것도 모르지만 작가가 보통으로 되는 건 아닌 거 아신다며 조카가 작가라서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말했지. 출장길에 들렀을 때도 주변 분들에게 자랑하시느라 일부러 공터에서 만나자 했었지. 주책이라 핀잔줬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도 왈칵 났었지.
10년, 아이에게 세상이 주어지는 최초의 시간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그 10년.
내 인생의 10년을 그분의 보호 아래 살았다.
내게 그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 친구, 고향이다.
사랑합니다. 고마웠어요. 잘 가요,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