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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Mar 11. 2019

함께 살아가겠다는 결심

YOU NEVER WALK ALONE.

30년을 혼자 살았다.

직장도 다녔고, 연애도 했고, 친구도 있었지만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혼자 했다. 모든 것을 혼자만 알고 있었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했다. 혼자서 ‘잘’ 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인생을 돌아보며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한 다짐과 노력의 과정을 앞으로 여기에 기록해본다.


to walk alone.

지금까지 수많은 일기장을 개설했다. 손글씨로 쓴 일기장도 여러 권. 모두 앞장 몇 장에 끄적임이 있을 뿐 결국엔 연습장으로 변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한 번 새로운 일기장을 시작한다. 과거의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는 일은 너무 괴로우니까. 과거를 다시 펼쳐보기가 너무 괴로운 이유는 뭘까.


‘결점’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꿈꿨지

일기장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과거의 내 모습이 내게 결점으로 작용할까 봐. 당연하게도 완벽하려면 결점이 없어야 한다. 현실 세상에서 ‘결점’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내 인생이라니 인정하지 어렵다. 아무도 이루어내지 못한 완벽의 상태를 내가 만들어볼 수 있지는 않을까? 혼자 판타지소설을 썼다.

so perfect.

존재만으로 완벽하다.

돈을 벌지 못해도,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너는 충분히 멋있어.
무리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돼.


이제는 최적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내가 ‘결점’이라고 정의했던 내 일부, 타인에게 ‘결점’처럼 보였던 나의 일부까지도 ‘나’로 인정하려 한다. 최선을 다하되 무리하지는 않으려 한다. 어쩌면 내가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직장에서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침형 인간 vs 올빼미형 인간

나는 밤과 새벽엔 쌩쌩하지만 아침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18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3년 동안 직장에 다닐 때에도 늘 그랬다. 머리가 멍하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몸을 쓰면 다치기 일쑤. 이런 내게 게으르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천재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술가 같다나? (이런 분들은 내가 그림이나 글, 음악 같은 예술에 흥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실망하더라.)


이런 개인적인 특성을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바라본 부모님은 그렇게 살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 거라고 고쳐야 한다고 하셨지만 그 긴 학교생활, 직장생활을 거치면서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스스로를 인정해주려 한다. ‘이런 나’로도 잘 살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려한다. ‘이런 나’지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내게 만들어 주려 한다.


I don’t need it.

우리네 세상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돌아가는 일과가 아니라면 어떨까? 모든 세상 사람들이 오전 11시에 기상하는 걸 당연시한다면? 모든 일과가 점심 먹고 나서 오후 1시부터 시작된다면? 그 사회에선 내가 제일 훌. 륭. 한. 사람 아닐까?


저 사람을 좀 봐. 새벽 4시까지 깨어있다니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지 뭐니. 너도 저 사람처럼 커야 한다. 자정도 안돼서 침대에 들어가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짓이야. 새벽시간의 아름다움을 생각해보렴. 얼마나 차갑고 감각적인 시간 대니? 그 시간대를 이불속에서, 꿈속에서 보내는 건 게으른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란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훌. 륭. 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이런 나와 그런 네가 함께 살기

요즘엔 이 원리를 제 삶 속 타인들에게도 적용해보고 있다. "시간 약속을 잘 못 지켜도 괜찮아. 물건을 잘 잃어버려도 괜찮아. 일을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응? 시간 약속을 잘 못 지켜도 괜찮다고? 글쎄. 정말 괜찮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촌각을 다투는 바쁜 사회라 인생 살기 쉽지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정도이다.  우리 사회에 만약 시계가 없다면. 우리 사회가 바쁘지 않다면, 그 사람이 나와 일하고 있지 않다면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어떤 개인에게 특성을 바꾸라고 말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6개월만 새벽 6시에 일어나 봐라. 너도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단다." 폭력적인 말이다. 아마도 나를 아끼기 때문에 하는 말이겠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쉽게 바뀔 수 없다. 
네가 적응하는 게 빠르지 않겠니?


하지만 알아야 한다. 바꿀 수 있다. 바꿔왔다. 자본주의는 250년 밖에 안됐어요. 노예라는 신분이 없어진 게 100년,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도 100년,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투표로 선출하기 시작한 것도 30년 밖에 안된 일인다. 9시–18시 출퇴근 시스템도 누군가가 만든 것이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누군가 바꿔낸 것이다. 지금 이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 무언가는 바꿔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말을 증명할 수 있는 일상을 꿈꾼다. 나를 나로, 너를 너로 살게 하는 사회. 나와 다른 네가 존재를 불행으로 여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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