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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May 28. 2022

강남역 한복판에 소방차가 나타났다

강남역 한복판에 소방차 2대가 나타났다.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는 소방차가 꽉 막힌 도로에 섬처럼 솟아 있다. 어떤 차도 멈춰 서거나 비켜주지 않았다. cgv 앞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가관이다. 다들 평소처럼 길을 건넌다. 사이렌 울리는 소방차 앞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천천히 길을 건넌다.


소방차는 사이렌을  키웠다. 사이렌 소리는  크고 높아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넌다. 소방차의 운전석과 보조석 창문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고,  안에는 급하게 보조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눈엔  소방차가 별로  급해 보이나? 혹시  사람들은 소방차가  끄러 출동하는 중이라는  모르나? 어떻게 사이렌을 울리는 소방차를 코앞에 두고 저렇게까지 편하게 길을 건널  있는 걸까? 어떻게 옆사람 팔짱을 끼고 어떻게 저렇게 유유자적 소방차 앞을 걸어가지? 내가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작은 목소리가  시끄러운 곳에서 들릴까?


소방차 사이렌이 계속되자 소방차 바로 앞에 있던 외제차가 드디어 경적을 울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길을 비켜주지 않고 길을 건넌다. 대체 다들 왜 그래? 너무 어이없는 이 시간. 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어찌어찌 소방차는 횡단보도를 통과하고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곁엔 횡단보도를 건너온 사람들이 남았다. 좀 전까지 내 건너편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내 곁에서 아까처럼 유유자적 걷고 있다. 서로를 보며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까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새삼 이 세상이 무서워졌다. 내가 이런 사람들이랑 같이 살고 있었구나 싶어서 소름이 끼친다. 어쩌면 이제 사람들은 본인 눈에 보이지 않는 위기, 고통, 슬픔 따위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어디선가 불에 타고 있는 무엇이나 누구보다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 오늘 밤엔 누굴 만나 뭘 하고 놀까 따위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혹은 개인 프로젝트나 스터디 모임이 더 중요했던 걸까? 뭔지 모르겠다.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아. 더 무서운 건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나도 이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처럼 보일 거라는 점이다. 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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