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 만들기

노래방 너무 좋아 짜릿해

워우워~~ 워어~

by 보라체

노래방을 굉장히 좋아한다. 중학생 시절 나는 엄마에게 받은 급식비로 노래방에 갔다. 점심을 굶거나 친구랑 돈을 반띵 해서 급식도 반띵 했다.

고등학생 나는 학원에 다니며 학원을 결석하고 노래방엘 갔다. 그때 같이 갔던 친구들은 각 대학교로 퍼져나갔다.

고2 때 우리 반은 노래하는 반으로 유명했다. 숙제를 안 해 온 사람은 교탁 앞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벌칙이 있었다. 그 벌칙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우리 반에는 가사 수첩이 돌아다녔다. 교탁에서 노래 벌칙을 수행할 사람은 수첩에 적힌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 수첩의 주인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2학년 1반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수첩에 적을 수 있었다. 우리 반 사람들은 노래를 잘하는 이가 많았고, 많은 선생님들이 노래를 시켰다. 우리 반이 노래를 할 때면 다른 반에서도 수업시간에 귀를 쫑긋하고 노래를 들었다. 쉬는 시간이면 우리 반에 놀러 와서 이번 시간에 그 노래 한 사람이 누구냐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나는 청소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쓸고 닦으며 다 같이 떼창을 했는데 우리 반 사람들이 노래를 너무 잘해서 나는 늘 귀호강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 그리워라.

대학생 나는 하루에 두 번 노래방을 가기도 했다. 코인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니 1인 학생가구의 가계에 얼마나 지대한 비율을 차지했는지 상상이 되실는지? 교수님께 받는 월급 50만 원으로 노래방을 열심히 다니고 차라리 밥과 술을 굶었다.

직장인 나는 퇴근길마다 코인 노래방에 들렸다. 강남에서 안산으로 시외버스에 콩나물이 되어 1시간 반을 덜컹거리며 퇴근하면 상록수역 버스정류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날이 잦을 때였다. 내가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아야 하지 엉엉엉. 그럴 때면 상록수역 코인 노래방에 들어가 목이 다 쉴 때까지 실컷 노래를 했다.

세월호 활동을 하고, 인권 매거진을 발행할 때에도 나는 친구와 매일 같이 코노에 갔다. 밤을 지새워가며 회의를 하고 나서도 어쩐지 마무리는 코노에서 해야 하는 그들이었다.



방탄 팬이 되고 나서는 친구와 2시간 넘게 방탄 노래만 부른 것은 내 자랑이다.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다니. 나와 함께 노래방엘 2시간! 심지어 방탄 노래로만 2시간!

코로나 시대에 많은 것들이 힘들지만 내겐 노래방에 갈 수 없는 슬픔이 절절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하향되고 나서 조심스럽게 노래방을 찾았다. 그리고 불러 제꼈다. 너무 소중한 시간이라 휴대폰을 꺼내 영상으로 남겼다.

나와 함께 노래방에 가던 사람들은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또 같이 노래방에 가고 싶다. 평소엔 보고 싶은 줄 모르고 살다가 노래방만 가면 그렇게 사람들이 보고 싶다. 죽을 만큼 보-고-싶~다.

지금도 어디선가 나와 노래방 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 믿으며 노래 부르는 내 모습을 공유합니다. 힘내라 얘들아!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기만 한 지 누가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한 건지. 태어났을 때부터 삶이 내게 준건 끝없이 이겨내야 했던 고난들뿐인걸.

팁. 저한테 "놀자" "만나자"하면 만나기 힘드실 텐데요. 그럴 땐 "노래방 가자"고 해보셔요. 모르는 사람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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