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약사를 꿈꾸지 못했을까?
몸이 자주 아프니 약국에 자주 오게 된다.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내밀어본다. 내 처방전을 받아 드는 이 사람은 약사가 아닌 것 같아. 하얀색 가운을 입지 않으셨다. 곧이어 가려져있던 공간에서 커튼이 열리며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나온다. 아마도 이 분이 약사겠지? 머리 위로 형광등 빛이 내리쬔다. 든든해 보여. 내가 복용해야 할 약을 설명해주는 약사님의 목소리가 상냥하다. 이 약을 받아 들고 여기서 한 포 까먹으면 당장이라도 병이 나을 것 같아. 저 약사님의 삶은 어떨까?
조금 큰 규모의 약국도 한 곳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이 4명을 넘지 않더라. 이런 규모라면 조직생활에서 오는 피로감이 덜하지 않을까? 사회성이 부족해서 조직생활이 어려운 나 같은 사람에겐 그저 부럽다. 4명이라니. 약사라는 직업이 월급도 많다던데? 혹시나 자금이 있다면 직접 약국을 차릴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더 많이 벌 수도 있지 않을까? 나름의 영업용 미소를 갖고 있으니 콜센터 말고 약국에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볼수록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이다. 나는 왜 지금까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약사'라는 선택지를 갖지 못했을까? 고등학교 때 화학 1, 화학 2, 생물 1, 생물 2 다 잘했는데? 왜 나는 공대만 주야장천 생각했던 걸까? 대학은 그렇다고 쳐도 대학원 갈 때는? 왜 대학원 갈 때마저도 공대만 고민했던 거냐는 말이다. 이제와 후회하려는 건 아니다. 이제와 도전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앞으로 남은 수십 년 인생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충분히 고민해본 뒤 선택되지 않은 선택지와 가져보지도 못한 선택지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약대를 선택지로 가져보지도 못했다. 왜 내 인생의 선택지는 이렇게나 비좁았던 걸까?
돈이 없어서 고민해볼 수 없었던 걸까? 우리 삶이 그렇잖아.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방법만 찾게 되잖아.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유학이 당연시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유학은 도전의 영역이 되는 것처럼. 우리 집은 3형제가 있는 빠듯한 살림이니 학비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학비를 내 이름으로 대출받더라도, 그게 부담이 될 정도였다. 학비 이전에 당장 약대 입시 준비를 위해 공부할 돈도 없으니까. 학비는 대출받아 약대를 다닌다고 해도 공부하는 동안 생활비도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결국 포항공대에 다녔는걸? 결국 학비는 대출받았고, 생활비는 장학금 형태로 학교에서 받았다. 필요하면 공모전으로 수백만 원 벌어서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6개월이나 일을 하기도 했는걸. 돈 때문이 아니다. 내가 약대를 꿈꿔보지 못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모든 것이 우연으로 취급됐다. 내가 이룬 것들은 내 노력의 결과로 인정받지 못했다. 반에서 10등 정도의 성적을 그냥 그렇게 유지하는 것도, 4등급이었던 영어성적을 1 등급 올 올렸던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도, 대학원 입시를 앞두고 한 달 반 만에 토익을 300점 올렸을 때에도, 포항공대 대학원에 갔을 때에도, 공모전을 몇 번이나 수상할 때에도 그랬다. 열심히 한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가 타고나서, 운이 좋아서, 학원을 다녀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취급됐다. 열심히 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정말 열심히 했다. 공부할 때는 새벽에 독서실에 처박히면 새벽 1시, 2시까지 까지 쭈욱 앉아 있었다. 밖에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관심도 없이 매일 똑같은 책상에서 나 혼자만의 진도를 뺐다. 혼자였다.
글쎄. 우리 아빠는 내가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다. 5급은 바라신 적도 없고 9급도 내가 도전하기엔 어려울 거라고 하셨다. 우리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다. 본인이 이루고 싶었던 꿈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그중 하나여야 한다고 배웠다. 둘 다 내 길이 아니었다. 그 두 가지 길이 아닌 어딘가로 가고 싶었는데 그게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원래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가 되어버렸다. 내 목소리는 없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들리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주어진 길로 갈 때에는 부모님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힘도 덜 들고 속도도 붙었다. 순풍이었다.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려 할 때에는 역풍을 맞았다. 딱 한 발자국, 게걸음처럼 옆으로 한 발자국 벗어나는 것에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이런 꿈, 저런 꿈 다 꿀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한 번 해보라고 밀어주는 사람이 왜 없었을까. 내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모아서 내 것으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네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다른 것도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쩌면 난 언젠가 한 번쯤 친구나, 부모님께 말해봤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나도 약대 가볼까?" "친구야, 나 약대 가볼까?" 아마 나는 대답도 들었을 것이다. "에이~ 네가 약대를 어떻게 가?" 이런 대답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을 것이다. 내가 약대를 어떻게 가냐며. 정말 분수를 모르는 얘기였다면서, 내가 약대 얘기를 꺼냈다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면서 다신 꺼내지 않았겠지. 누군가 나한테 얘기해주면 참 좋았겠다.
해봐~ 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못할 이유가 없지~ 너 열심히 하잖아. 잘할 거야. 해보고 싶으면 한 번 도전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