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 만들기

요즘 어떻게 지내?

by 보라체

나는 바쁘게 지내. 평일에는 9시부터 6시까지 상담소에서 일해. 내가 담당하고 있는 내담자들의 사건의 진행과정과 마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일이 주된 업무이지만 실제 업무 시간으로 따지면 이런 일 보다는 다른 일들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 같긴 해. 있잖아? 행정업무들, 예산에 관련된 일들, 캠페인 준비나 기록, 업무공간 정리와 청소 같은.


내가 일하는 곳은 조금 시골이야. 논과 밭이 잔뜩 있는 시골이 아니라 시골 중에서도 읍내 같은 분위기? 뭔지 알지? 낮고 작은 상가 건물들이 줄 지어 있는 곳. 보도의 폭이 너무 좁고 울퉁불퉁해서 걸으려면 바닥도 살피고,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며 걸어야 하는 곳. 이런 곳에서 지내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해. 여기로 출근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어색해. 주변에 프랜차이즈 카페도 없고, 5일마다 장이 열려. 메인 도로는 왕복 2차선 도로. 이 도로를 횡단하는 현수막이 전봇대 사이사이로 걸려있어. 현수막 내용이 아주 유용해. 마을 장학생을 모집하기도 하고, 누구 아들이 어느 대학을 갔는지도 알려주더라. 소음을 일으키는 공사장에 거친 말로 항의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런 현수막은 처음 봐서 신기하더라고. "※주차장 공간 없다. ※시끄럽다. ※지저분하다. ※손님들이 되돌아 간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한다." 같은.


우리 상담소는 퇴근시간이 되면 6시 땡에 문 열고 출발하는 편이야. 매일 6시 땡 퇴근을 할 때마다 정시퇴근이 얼마나 좋은지, 필요한지, 정당한지 다시 한번 느껴. 이 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해진 퇴근시간에 "땡"하고 집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들 조금은 더 행복해질 텐데.


퇴근길에는 보통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봐.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긴 한데 퇴근길에는 잘 읽히지가 않더라고. 요즘 김포 사람들은 GTX 때문에 분노하고 있어. 철도계획에 서울-김포 연결이 제외되면서 향후 적어도 10년은 김포가 겪고 있는 교통난이 연장되게 생긴 거지. 나는 김포시민들과 반대방향으로 출퇴근해서 직접적인 불편함은 없는데 김포골드라인 타고 가면서 반대쪽 지하철을 보자면 어휴. 어떤 사람들은 지역차별이라고 하더라. 일리 있다고 생각해. 김포 인구는 엄청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지하철도, 경찰서도, 시청도 다 너무 작고 적어. 이렇게 인구가 많아질 줄 몰랐던 걸까?


얘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샜네. 평소에는 7시 정도면 서울에 있는 집에 도착해. 집에 도착하면 뭔가 심정이 복잡해. 퇴근 이후에 해야 하는 일들이 있거든. 운동, 학점은행 수업 듣기, 지방 자치조례 만들기 온라인 수업, 정의당 활동, 정치학교 숙제, 책 읽기, 일기 쓰기, 소설 쓰기.... 이 중 하나를 결정해서 해내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벌써 지쳐버리기가 일쑤야. 덕분에 매일 칼퇴근을 해도 매일 마음이 바빠. 나름대로 다양한 방식을 구사하고 있거든. 요일별로 할 일을 정해두기도 하고, 모든 일을 매일 조금씩 나눠서 해보기도 하고. 아직 성공적이진 않지만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


요즘에는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있었어. 진행자는 내가 아니라 상담소 외부의 선생님이지만 나도 참여하면서 보조도 하고 기록도 하고 있어. 이런 날에는 김포에서 10시가 넘어야 끝나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면 11시 반이야. 너무 늦지? 우리 상담소는 야근을 하면 평일 근무를 대체할 수 있어서 다음날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어. 다행이고 행운이지. 누구나 이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야근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가 없는 것 같아. 야근이란 삶의 틀이 달라지는 일이고,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에 대한 생존의 문제라고도 생각하거든. 정시퇴근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야근이 얼마나 무자비한 일인지 매일 깨달아.


퇴근하면 집에 있는 애인을 볼 수 있어서 기뻐. 작은 집이지만 애인과 같이 살고 있거든. 나는 우리 애인 얼굴을 보면 하루 피로가 다 풀려. 나를 보면 생글생글 웃어주거든. 오늘 하루 고생했다면서 꽉 안아주고, 가방도 받아주고 마스크도 빼줘. 손을 씻고 오면 오늘 어땠는지 물어봐주기도 하고. 시원한 물 한 잔을 건네 주기도 해. 진짜 천사 같지? 힘든 일이 있었다고 하면 위로해주고, 어려운 일이 있었다고 하면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줘.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하면 80킬로가 넘는 나를 번쩍 안아 올리면서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대단한 사람이야 정말.


11시 반에 퇴근하는 날에도 잠들지 않고 나를 기다려. 이미 눈에는 졸음이 가득한데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 내가 늦게까지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활동을 하고 오는 날에도 꼬박꼬박 자지 않고 기다리는데 가끔은 기다리는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 있어. 그러면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내가 오늘 이런 사람을 혼자 두고 밖에서 대체 뭘 하고 온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밖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좋았는데도 말이지, 나참!


내가 요즘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 그 이유를 찾아볼 겸, 체력도 회복할 겸 오늘 휴가를 내고 내가 좋아하는 경의선 숲길의 카페에 나와 글을 쓰고 있는데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게을러서 그런 거 아닐까? 쉽게 결정해두고 싶기도 해. 물론 아니지. 나는 전혀 게으르지가 않아. 너무 바빠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여전히 잘 모르겠어.


요즘 내 고민 중 하나는 내가 책 한 권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한 편의 영화나 20분이 넘어가는 유튜브 영상 같은 긴 콘텐츠를 소화하지 못하겠더라고. 그래도 어제는 가벼운 영화 한 편을 다 봐 냈고, 지금은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 7년의 밤을 반 정도 읽었으니 좀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하네.


남들은 알지 모르겠지만 내 집중력과 몰입감을 되찾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걸 시도해왔어. 그중 하나가 단톡 방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었지. 당 내에서 맡고 있는 일을 모두 접고, 단톡 방을 다 나왔어. 그러고 나니 훨씬 일상에 중심이 잡히더라. 여전히 부족하긴 해. 조금 더 조용하게 살고 싶은 것 같아. 나를 위해 고정적인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 이렇게 글도 쓰고, 소설도 쓰고 싶어. 요즘의 나는 그런 것 같더라고. 글 내용이 무엇인지 보다는 고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지에 관심이 더 많이 가.


나는 정기적으로 뭘 해낸 경험이 거의 없어. 몇 달간 폭풍처럼 몰아치며 뭔가를 겨우 해 내는 스타일이거든. 내가 나에게 주로 하는 말은 대체로 이런 말이야. "너는 욕심에 비해 능력이 부족해."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혐오하며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에 최대한 미루고 짧은 시간에 과몰입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 같더라. 집중해있을 때에는 화장실 조차 몇 시간 씩 뒤로 미루는 편이야. 나만 알고 있는 내 모습이지. 이런 내 습관을 고백하면 '집중력이 좋다'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나도 그런 줄 알았는걸? 작년에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됐어. 화장실을 가면 집중이 깨질까 봐, 내 집중력을 못 믿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화장실을 미뤄왔다는 것을 말이지.


내 무의식에는 깊은 불안이 있어. 예전에는 내게 깊은 우울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간단해 보이는 이 두 개의 단어를 분리해내느라 1년이나 약을 먹었어. 삶에서 중요한 숙제였지. 처음으로 손톱을 깨물던 게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해.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까지 손톱을 깨물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요즘은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느껴. 손에 말랑 말랑한 장난감을 쥐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더라고.


내 근황을 길게 얘기해봤어. 어땠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이것저것 고민 중이고 여전히 이것저것 하는 중이야. 여전히 되고 싶은 게 많아. 어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표현하던데 나는 여전히 되고 싶은 게 많아. 여전히 내가 뭘 하는지 보다 내가 이걸 해서 뭐가 될 수 있는지를 습관적으로 생각해.


소설을 쓰는 나 자신보다,

소설을 써서 성공한 나 자신을 원해.

정치를 하는 나 자신보다,

정치인이 된 나 자신이 궁금해.


여전히 나아지고 싶고, 여전히 달라지고 싶고, 여전히 성공하고 싶어. 그냥 조금씩 해 봐도 괜찮은데 여전히 어려워.


성공한 소설가가 되지 못할 텐데 소설을 써도 될까.

성공한 정치인이 되지 못할 텐데 정치를 해도 될까.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자주 말해주고 있는데 아직 안 들리나 봐. 우리 애인도 내게 자주 말해주고 있거든.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살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도 내 속의 어떤 나는 여전히 우리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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