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 만들기

노란머리 30대

어디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by 보라체

몇 년 전에 함께 일했던 직장상사 A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하던 공공기관에서 급하게 일 할 사람이 필요한데 어떻냐는 제안이다. 4일에 60만 원? 흠- 통장에 큰 도움이 되겠군. "그 알바 제가 하겠습니다!ㅋㅋㅋ"


카톡을 보내 두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머리가 노란색이다. 누군가 나에게 일을 주려고 한다면 내가 노란 머리임을 상대방에게 알려야 한다. 노란머리로 보낸 20개월로 알게 된 사실이다. 미리 일러주지 않으면 제안을 해준 A와 A의 직장상사들, 그리고 나까지 다 같이 곤란해진다. 곤란한 상황을 막아보자.


그런데 A, 제가 지금 노란머리예요. 이런 노란머리.
카톡 보내며 찍은 따끈따끈한 노란머리 사진


[ A] 나흘 중 이틀은 행사 지원, 이틀은 문서작업이라 크게 문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제가 센터장님께 한번 여쭤볼게요.
[나] 넵. 한 번 해주세요.................. (잠시 후)
아오. 센터장님이랑 얘기했는데
많이 노란색이라 안 될 것 같대요.
미안해요 ㅠㅠㅠㅠ


많이 노란색? 흠. 조금 노란색이면 괜찮은 걸까? 많이라면 어느 정도를 많이 노란색이라고 하는 걸까. 내 머리는 많이 노란 걸까? 내 생각엔 하얀색에 가까운 노란색인데 다른 사람 눈에는 많이 노랑이군?


내게 알바를 제안해 준 A에 대해 생각해본다. A는 내가 지금까지 여섯 번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존경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A가 얼마나 급하면 퇴사한 지 2년도 더 된 나에게 연락을 하게 됐을까. 시간이 가능한 내가 출동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A에게 다시 연락을 넣었다. 머리카락 색을 좀 어둡게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아니에요. 괜히 머리색 바꾸지 말구 ㅠㅠ
다음에 또 다른 자리 생기면 연락할게용.
고마워요 ㅠ


다음? 다음이요? 이번에도 퇴사한 지 2년이 넘은 내게 연락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다음이 있을까? 솔직히 말해 다음에 대해 기대는 없다.


나의 노란머리는 왜 거절당한 것일까.

단순히 머리색이 문제라면, 머리색을 어둡게 하면 될 일이다. 머리색을 어둡게 바꾸겠다는 내 말은 왜 상황을 바꾸지 못했을까. 내가 알고 있는 A는 아마도 나와 내 선택을 존중하느라 이렇게 말했을 터다. 겨우 4일 때문에 머리색까지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A의 배려와 존중은 나에게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조금 퇴색됐다. 의도와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간단하다. 난 머리색을 바꿔도 일 할 수 없다. 노란머리는 공공기관에서 일할 수 없다.


머리카락 색이 노란색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노란머리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절당한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짐작하겠지만, 노란머리는 '나'라는 거대한 빙산에서 수면 위로 드러난 일각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 모두 다르니 그 다름을 드러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 나다. 다름이 곧 정체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름에 무지했던 수십 년의 과거를 반성하고 참회하며 일상을 보내는 사람, 혼자서는 너무 힘드니까 다 같이 변화하자고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나다.


시스템과 권력의 권위와 무지를, 부정과 무례를 참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나다. 이 땅에 존재하는 온갖 이해할 수 없는 문화들은 내 몸에 우울증과 무기력증, 신장결석과 급성 위염, 결국엔 대상포진까지 선사하여 나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받아들이지 못해 병으로 뱉어내는 사람이 나다.


어떤 상황이라도 조금 더 나은 상황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다. 더 나아지기 위해 관찰하고 지적하는 사람, 방법을 찾는 사람, 함께 변화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나다. 뭔가 찝찝한 것은 말해야 하는 사람, 말하지 못할 때는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기라도 해야 하는 사람. 노란머리는 그런 나를 상징하는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 대고 소리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나도 받아줄 수 있어요?


노란머리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만, 장소만, 공간만, 조직만, 문화만 나를 수용할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심보의 발현이다. 내게 노란머리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담은 실문이자, 연약한 나를 보호하고 싶다는 어설픈 선언이다. 그렇기에 노란머리라서 받아줄 수 없다는 말은 내게 이렇게 들린다.


난 너를 받아들일 수 없어.


혹시 나에게 또다시 이런 연락이 온다면 난 이 일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때의 내가 검정머리라면 할 수 있을 것이고, 노란머리라면 이번처럼 할 수 없을 것이다. 조직은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 예산, 행정을 말하는 공공기관에서 노란머리가 받는 대우라는 것이 달라지는 날? 까마득하다. 내가 그 끝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단 내가 셀프-뿌리탈색에 지쳐 검정머리로 되돌아가는 날이 더 빨리 올 걸?


아마도 관료제 때문이겠지.

나를 거절한 그곳의 문화를 마음대로 추측하며 화를 풀어볼까. 머리색깔은 하나의 테스트이다. 우리 문화에 네가 맞출수 있는지 묻지 않고도 물어오는 질문이다. 노란머리 아르바이트생은 불필요하고 불편하다. 나눠줄 돈도 명예도 넘쳐나는 굳건한 기관이 이런 불편을 마주할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을 끌고 가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면 안 된다. 돈 앞에서 사람은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재일뿐. 이런 불편한 상황 마주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사람이 대체재로 공급되는 것이고, 오늘은 그 대체재가 바로 나다.


그곳의 문화는 예전에 내가 일할 때에도 그랬다. 그게 어떤 상황이라도 일단 발생했다면 그것은 '문제 상황'으로 취급된다. issue로 취급될만한 situation이 problem으로 확대 해석되는 것이다.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내포된 대체재는 모두 지우도록 배운다. 대체재는 대체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대체재니까.


상황이 문제시되는 것은 문제 상황(사실 그냥 상황이지만)이 발생하면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시스템 때문이다. 내 단계에선 situation 수준이었던 상황이 누군가에겐 issue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problem으로 해석된다. 나 때문에 내 윗사람과 그 윗사람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고생하는 상황은 정말 고통스럽다. 그런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누가 봐도 안전한 길로, 아무 이슈도 없는 조용한 길로 가야 한다. 과거의 나도 이런 이유를 들어 여러 대체재를 사용해 사람과 상황을 대체했다.


그때의 나에게 노란머리라는 대체재는 선택지로 주어진 적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것 같다. 관료제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와주면 좋겠다. 노란머리인 내게도 일을 제안한 A처럼 그렇게 조금씩. 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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