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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Sep 07. 2021

성폭력 상담소의 시간

우리 상담소의 일상을 글로 쓰고 싶다.

정말 얼마나 다이나믹한지. 매일이 새롭다.


오늘은 무슨 일이 터질까? 강제추행? 강간미수? 유사강간? 디지털 성폭력? 직장 내 성폭력? 오늘은 누가 울면서 전화를 해 올까? 새로운 피해자일까? 내 내담자일까? 오늘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린이일까 노인일까 청년일까 장년일까? 투쟁의지가 있는 사람일까? 숨고 싶은 사람일까? 나랑 공통점도 있을까? 오늘은 누가 죽겠다고 할까? 피해자? 피해자의 부모? 가해자?


오늘은 어떤 기관에서 피해자를 연계할까? 경찰서? 병원? 학교? 군인? 사회복지시설? 피해자와 함께 갈 곳은 얼마나 많은지. 병원, 경찰서, 검찰청, 법원... 오늘은 어떤 사건이 송치될까? 기소될까? 판결 날까?


그만두겠다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사람,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사람, 장사를 그만두고 싶은 사람, 친구관계를, 연애를, 결혼을 그만두고 싶은 사람


지키고 싶은 것은 얼마나 많은지. 내 시간, 내 정성, 내 자존심, 내 명예, 내 일자리, 내 아들, 내 친구, 내 직장동료.


어떤 사건이라도 잘 지원하는 상담활동가가 되고 싶다.  요즘은 직장 내 성폭력에 집중하고 있지만 곧 또 바뀔 수도 있다. 새로운 사건은 매일 있으니까.


사건은 경찰-검찰-법원을 거치며 송치, 기소, 1심 판결,,, 꽤 여러 번의 결론을 거친다. 결과가 과정이다. 결론들은 쌓이지 않기에 매 단계마다 꼭 이겨야 한다. 치열하다. 국가가 가해자를 심판하는 것일진대 이상하게 피해자가 심판을 받는다.


피해자를 따라다니며 피해자를 조력한다. 힘을 보탠다. 당신께서 지키고 싶어 하시는 것을 지킬 수 있도록 부족한 머리를 굴려본다. 아들의 명예도 지켜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구겨진 자존심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다 지나갈 것이라는 진리를 전하며 지금까지 인생 잘 살아오셨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희망을 얹는다.


모든 것을 기록한다. 피해자를 만나 상담하며 한 번 듣고, 상담을 기록하며 한 번 더 듣는다. 모든 듣기 평가가 그렇듯 두 번째 들을 때 더 잘 들린다. 방법을 찾는다. 시의원님께 전화하고, 경기도 무슨 센터에 전화하고, 서울의 무슨 여성단체에 전화하고, 노무사님께, 변호사님께, 경찰관에게,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를 하고 또 한다. 이렇게 적어 보니 듣고 말하고, 듣고 기록하고, 듣고 전화하는 일이 우리네 일인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죽음이다. 상담소에 들어온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죽는 데 성공한 피해자는 없었다. 시도는 잦다.


오늘은 어떤 가해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체 왜 죽었을까? 정말 알고 싶지 않은 죽음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없이 피해자는 앞으로 어떻게 삶을 헤쳐나가야 하나? 물론 가해자의 처벌이 잘 되지 않아도 피해자는 회복할 수 있지만 죽는 건 진짜 뭐 하자는 건지. 그렇게 죽을 거면 왜 성폭력을 했냐?


퇴근하며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니 얘기가 샜다. 상담소에서 보내는 내 일상에는 흐름이 있다. 요즘은 직장 내 성폭력사건에 집중하는 흐름, 밀린 상담일지를 쓰느라 오히려 상담이 밀리는 흐름을 갖고 있다. 이 글을 쓸 시간에 상담일지를 쓰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지.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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