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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Feb 14. 2022

아이에게 자존심 세우는 엄마

성폭력 상담소의 일에서 성폭력 상담은 괜찮다.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다른 누구도 아닌 피해자의 엄마들이다.


아이 인생에서 자신이 인생을 앞세우고, 아이를 존중할 생각 없이 그저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결정이라며 착한 사람인 듯 스스로를 꾸며내는 엄마들이 있다. '내가 걔 엄마인데 나보다 더 걔를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오만한 엄마도 있다. 일어나지도 않는 별별일은 혼자 상상하곤 몇 날 며칠을 울며 상담소에 전화하다가 결국은 아이 의견 무시하고 가해자와 합의하는 무시무시한 엄마도 있다.


아빠는 뭐 이 씬엔 잘 나타나지도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상담소에 들어와서 본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빠에게도 사건을 공유했다. 다만 피해자가 여성이고 성폭력 사건이 성 관련 문제라는 이유로 아빠는 저만치 빠져있기로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합의해두고 엄마가 모든 걸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뿐.


남편에게 사건을 공유하게 된 이유는 각자 다양하다. 남편도 가족의 구성원이기에 당연히 알아야 하고 함께 해결하려 한다는 엄마가 제일 듬직하다. 이외에 남편이 가족의 경제권을 갖고 있는데 사건 해결이나 피해자인 자녀 치료에 돈이 필요해서 말하는 경우, 혼자 감당하기 어렵고 무서워서 '가장'인 남편에게 말하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가 있더라. 그래도 남편에게 사건을 공유하는 건 정말 다행이다.


남편한테는 사건을 숨기는 엄마들이 있다. 재앙의 서막이다. 남편이 알아봐야 좋을 것 없다는 혼자만의 판단을 피해자인 자녀에게도 강요하는 것이다. 남편은 바깥일, 자신은 집안일 담당이라 그런 걸까? 성폭력은 '집안일'이라 남편에게 들켜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건을 비밀에 부치는 것만으로도 전형적인 2차 피해가 시작된다. "아빠가 아시면 어쩌려고 그래?" 자녀에게 협박하면 최악이다.


나는 이번 명절에 엄마 아빠에게 이별을 고했다. 부모님과 헤어지겠다는 결정이야 초등학교 6학년 때 내린 오랜 마음이었다. 나이 서른다섯, 실행에 옮기기까지 20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이런 엄마들을 매일 마주해야 했던 상황이 추진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부모와 이별하려면 이 정도의 확신이 필요하다는 말도 되겠지만.


모든 엄마가 따뜻한 것은 아니다. 모든 엄마가 강하지도 않다. 강한 엄마라고 해서 모든 면에 전부 강한 것도 아니다. 엄마도 사람이기에 어느 면은 놀랍도록 유약하다. 자존심도 있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튀어나올 때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단 숨기고 본다. 아이에게 묻지도 듣지도 않는 그 답답한 시간을 지나는 동안 아이들은 엄마에게 상처받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들은 여전히 아이를 지키려고만 한다.


요즘 나는 엄마들의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지켜보는 게 싫은 것 같아. 자녀 인생에 자신의 자존심을 앞세우는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한다고.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수십 년의 시간을 쓰는 게 아이들이라고.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자존심 세우면서
혼자 고민할 필요 없다고.
어차피 아이들도 다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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