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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Apr 16. 2019

당신은 뭘 하고 있었나요?

세월호 이후 다섯 번째 봄, 침묵의 대화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하고 나서 다가 온 다섯 번째 봄이다. 캠페인에 나가지 않은지 1년이 넘었다. 누군가 리본을 나눠 줄 때면 목례만 겨우 하고 받는다. 이런 기억을 추억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길고 긴 시간을 지나고 있다. 세월호 가족들은 바다가 싫다는데 난 여전히 바다가 좋고, 가족들은 벚꽃이 싫다는데 여전히 난 벚꽃이 좋다. 그동안 바뀐 것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올 해에는 침묵 행동에 참여한다. 몇 년째 이 행동을 알았으면서 한 번도 합류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용기 냈고, 어떻게 보면 도망쳤다. 도망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더니. 하필이면 올해 용기가 났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멀리서도 사람들이 보인다. 노란색 깃발 여러 대가 펄럭이고 있다. 여기로 모이세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보인다. 백 명 남짓의 사람들이 검정 새 옷을 입고 서 있다. 카메라도 몇 대 와있고,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이 자리에서만 만나는 얼굴들. 나에게 집 같은 곳이 되어준 사람들. 무덤덤하게 인사하는 것도 고통이다. 참사 5주기라는 시간은 이들과 더 반갑게 인사해도 되는 시간일까.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오르니 자원봉사자들은 청테이프를 찾아 앉으라는 안내멘트가 나온다. 오늘 나는 자원봉사자구나.


검정 옷을 입고 파란 하늘을 보며 가만히 섰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온다. 치타/장성환의 옐로 오션. 이 노래를 첫 곡으로 하다니 누구지 알지만 참 나빴다.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너무 났다. 처음엔 참아볼 만했는데 나중엔 어깨가 흔들려서 혼났다. 난 또 왜 이렇게 우는 걸까. 내 어깨를 들썩 거리게 만드는 이 부채감이 지긋지긋하다. 가족들과 먼 거리에서, 활동가 선생님들과도 먼 곳에서 겨우 몇 년 가끔 하는 걸로는 부채감이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아직도 바뀐 건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다. 눈 덩이처럼 불어난 세월호 가족에 대한 오해는 그냥 그렇게 굳었다. 뭐라도 해보자며 불나방처럼 달려들었으나 뒤 돌아보면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린다. 최전방도 중심부도 주변부도 그 어느 곳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 내 자리는 어디일까. 누군가 오늘처럼 '니 자리는 여기야' 라며 이렇게 청테이프로 표시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주제에 부채감이라는 갖고 있다고 말하는 내가 우습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본다. 어떤 사람은 흘깃 보곤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어떤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우리만 본다. 가만히 서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눈을 맞춘다. 침묵의 대화를 나눈다. 어떤 사람은 우리를 찍는다. 차들이 우리 앞을 지난다. 열린 창문으로 우리를 보고 우리를 찍는다. 우리 잘 보여요? 우리 보면서 무슨 생각해요?  


우리 앞엔 호두과자를 판매하는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는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서있다. 그 색이 마치 광화문 광장의 색을 스포이드로 찍어서 넣은 것 마냥 파랗다. 우리가 서 있는 동안 아저씨도 가만히 서서 우리를 본다. 리처럼 두 발을 땅에 대고 가만히 서 있다. 지나는 사람에게 호두과자 사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아저씨도 함께하고 있는 거겠지. 아저씨 고마워요. 그렇게 몇 곡의 노래가 지나고 1부가 끝났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한다고. 나눠주신 초코파이를 두 개나 먹고 그늘에 쪼그려 앉아 멍하니 있다.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서 있는 게 의외로 힘드네." "현수막이 얇은데도 들고 있기가 쉽지 않아." 


쉬는 시간이 끝난 광장은 그 사이 조금 더 부산해졌다. 여러 음악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우리도 노랫소리를 키워 보지만 더 부산해질 뿐. 한쪽에선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린다. 광장 건너편 KT건물에는 청년들이 분홍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춤을 공연하고 있다. 한미동맹 반대라고 적혀있다. 저 쪽에서도 우리가 보일까? 가만히 있는 우리와 춤을 추는 청년들, 비슷하기도 하고 조금 다르기도 하다.


오늘은 경찰이 정말 많다. 멀리서도 형광색 조끼는 눈에 띈다. 여럿의 경찰 대열이 광장을 휘젓는다. 바로 몇 분 전이지만 아까의 차분한 공기가 그립다. 가만히 서 있는 우리 앞에 귀여운 아기가 갑자기 아장아장 튀어나온다. 그 신속한 직진본능이 어찌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샌다. 나, 웃어도 되는 건가?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두 사람이 노란색 현수막을 펼쳐 든 채 우리와 마주 보고 섰다.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자 우리에게 걸어온다. 우리의 노란색과 저 둘의 노란색이 점점 가까워진다. 뭐지, 일부러 우리 보라고 펼친 건가? 감동이다. 이렇게 대화할 수도 있는 거구나. 고마워요. 곧이어 노란 현수막 다섯 개가 더 다가온다. 이번에는 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 다섯이 노란색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신호가 바뀌자 고개를 들고 우리를 향해 앞으로 걸어온다. 노란색이 다가온다. 진실이 다가온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확인하고 안심하는 시간. 안심할 수 있어서 또 한 번 안심되는 시간이다. 소중해. 난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시간을 보내게 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는 시간.


청와대 서명으로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에 동의해주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77697?navigation=petitions&fbclid=IwAR3expZiXLih4hAmXQ4_WuGSxXhFmI7uvtXiDzCj-pt8KLWf5aHm3iv4X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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