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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Nov 26. 2021

오늘은 여성폭력 추방의 날이고 제 월급날입니다

여성폭력을 추방에 관련된 다양한 메시지들이 나오고 있어서 여성폭력판(?)에서 일하는 1인은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매일 사람들이 이렇게 젠더폭력에 관심 가져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만큼 좋아요.


오밤중에 쓰고 싶은 얘기는 좀 결이 다른 얘기입니다. 여성폭력판(!)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한 얘기가 하고 싶었어요.


이 분야는 먹고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대단한 대우를 바라는 건 아니고요. 그저 최저임금 받으면서 일하기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모전 도전하고 글 쓰고 유튜브 만들고 이런 투잡을 나름대로 뛰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금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금을 못하니 미래가 불안하고, 미래가 이렇게 불안하니 일에 집중하기기 힘듭니다. 자격증 공부를 하기도 하고 전문직 입성, 대학원 진학을 검색해보면서 미래를 고민해보지만 딱히 방법도 없고, 시간도 없고, 준비에 쓸 돈도 없기에 대부분 망상으로 끝납니다.


특히 요즘 제가 일하는 지역에는 상담 건수가 작년 대비 2배가 올랐습니다. 피해자도 많아지고 가해자도 많아졌습니다.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뉴스에선 젠더폭력사건이 늘 다뤄지고, 시민들의 성인지 레벨이 오르면서 신고율이 오른 것일 수도 있어요. 신고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 너무 감사하고 다행인 일인데요. 그런데요 월급은 안 올라요.


물론 작년보다 조금은 오를 거예요. 그게 아니라 사회복지사 임금체계에 미달하는 현실은 앞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슬프다는 말입니다.


아니 물론 이 문제는 저희 상담소 한 곳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 상담소는 소장님께서 엄청 이런 부분 신경 쓰셔요. 그게 아니라 저는 여성가족부의 [아동여성권익증진사업]으로 나오는 [성폭력피해상담소 운영보조금]을 통해서 월급을 받거든요. [아동여성권익증진사업 운영지침]에 명시되어 있어요. 저 같은 초임에겐 최저임금 주라는 내용이 무려 지침에 적혀 있는 이유가 뭘까요 대체. 껄껄껄...


인건비 보조금이 추가 사업으로 나오고, 지자체에서 10만 원 더 주지만 4대 보험 제하면... 200은 턱 없죠. 월급이 적으니 저같이 나이 많은 청년은 버티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다른 상담소를 봐도 50대 중년 또는 20대 사회초년생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으면 좋겠거든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일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너무 슬프고 막막합니다.


여가부 자체가 임금체계를 짜게 갖고 있는 것도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산자부/과기부 월급 받던 사람이라 그 격차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도 맞을 겁니다. (환경부도 짜더라고요) 같은 진흥원끼리 혹은 연구소끼리 월급 비교해보세요.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가 부처 간 월급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게 학계의 정설임다. 연봉 오백~천만 원씩은 차이 날걸요.


한국산업기술진흥원 vs 한국여성인권진흥원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vs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건 또 다른 얘기인데요.


보통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정책으로 만들잖아요? 저는 목소리를 다듬어서 낼 여유가 없습니다 ㅜㅠ 여성폭력 관련 정책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만 현장에 있는 저는 이미 만들어진 정책을 따라갈 시간조차 없습니다.


다른 분야지만 대학원에서 나름대로 정책을 공부했으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정책용어가 익숙한 사람이 바로 저일 텐데요.


다른 상담소 상담원들과는 다르게 나름대로 정의당 고위직(?)을 수행하며 정치와 연결되어 있으려고 용을 쓰는 게 바로 전데요.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을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제도 변화를 계속 추구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바로 전데요.


이런 저 조차 힘든데 다른 상담소는 어떨까 궁금해요. 물론 저희 상담소는 이런 쪽도 갱장히 열심히 챙기고 있거든요. 다른 상담소는 제도 보완에 얼마나 신경 쓰면서 노력하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요. 혹시 피해자 지원과 제도개선을 병행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걸까요? 불가능한 걸 하고 싶다고 욕심부리는 걸까요?


각 지역마다 성폭력 상담소가 있고, 많은 소장님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저 같은 상담활동가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지,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지 너무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디지털 성폭력 지원기관으로 가면 월급은 좀 오른다는데 정신과 단골고객이 된다는 말을 들어서 당분간은 선택지에서 지우려고 하거든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사회복지노조에 가입하긴 했는데요... 하... 뭐라도 해 봐야 하는 걸까요 ㅜㅜ 뭘 해볼 수 있을까요? 저 투잡 뛰어야 해서 시간이 없는데요 ㅜㅜ 당장 다음 주 금요일은 청지사 면접 봐야 하는데... 사실 이런 글 쓸 시간에 공부해야 하는데요 뀨.... 오랜만에 쓴 브런치 글 근데 이제 공부하기 싫은 마음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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