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체 Feb 24. 2020

나를 기만하지 마세요.

직장 내 성희롱의 피해자가 되었다.

기만 ; 남을 속여 넘김


서로 속고 속이면서 산다지. 선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지? 나는 요즘 직장 내 성희롱의 피해자가 되어 매일매일 속아주며 살아가고 있다.


별일은 아니었다. 회사 선배에게 모르는 것들을 질문했고, 선배는 명쾌하게 가르쳐줬다. 다만 시선이 가슴에 향해 있을 뿐. 편안한 옷을 벙벙하게 입고 출근하고 있기에 내가 투머치 예민이겠지 생각했다. 그냥 다른 사람 눈을 잘 못 보는 그런 사람이겠지. 마음대로 생각했다.


어떤 날 난 짧은 바지를 입었고, 그날 그의 시선은 내 다리사이에 집중됐다. 허벅지 사이를 뚫어지게 쳐다봤고 나는 노트를 펼쳐서 허벅지를 가려야 했다. 그는 민망해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여성의 몸을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게 아니었다. 고민하다 직장 동료에게 말을 꺼냈다. 직장 동료 중에 피해자가 더 있었다. 여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옷을 조심해서 입어야 하나? 짧은 바지도 얇은 티도 입지 말아야 하는 건가?


다음 날, 회사에 성희롱을 고지하면서 요구사항을 함께 제시했다.


1. 피해자-가해자 즉각 분리

2. 피해자가 2명 이상이니, 전 직원 상대로 피해상황 조사

3. 가해자 공개 처벌


상사의 명령에 따라 가해자는 우리 센터를 즉각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 전 직원이 참여하는 아침 조회에서 가해자가 나를 고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검찰에도 고소가 된다더라! 혐의는 명예훼손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고소할 때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 혐의, 명예훼손.


또 다른 며칠이 흐르고 난 뒤 회사는 가해자를 해고했다는 단체문자를 보냈다.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회사라니 찝찝했지만 안심했다. 또 다른 며칠 뒤, 가해자가 나와 다른 공간에서 업무를 계속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를 해고했다는 것은 회사의 거짓말이었을까? 해고는 했지만 다시 취직한 것인가? 둘 중 어떤 쪽이든 회사는 성희롱 피해자들을 기만했다. 해고했다는 거짓말이라도 하지 말지. 지금 회사에는 일 할 사람이 부족하다. 그래서 침묵했다. 나는 신입이기 때문에 업무에 별 도움이 안 되니까. 그래서 다 알면서도 가만히 시간을 흘려보냈다. 가해자는 밖에서도 가끔 업무 사고를 쳤다. 그럴 때마다 우리 센터는 직원들의 거친 한숨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었다. 나 또한 달라지겠다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수 없이 결심했다. 피켓을 들었고, 집회에 참석했다. 구호를 외치고,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된 나는 오늘도 또다시 가만히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준다. 늘 괜찮다고 답했지만 사실은 숨만 쉬어도 버겁다. 왜 나는 늘 당해야 하지?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영화 속, 드라마 속 악녀 캐릭터에 환호하지만 현실 악녀가 될 용기는 없다.


죄책감이 심하다. 동료 직원들이 표정만 어두워도, 희미한 한숨소리에도 '나 때문인가?' 생각한다. 계속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부모가 교육을 잘못했겠지, 우리나라는 성교육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여성들이 없는 가정환경에서 컸나 보지, 사람으로 존중받는 경험을 못했나 보지...


사실 아무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혹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밤에도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느라 하루를 다 쓴다. "개새끼, 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성희롱 가해자를 마음껏 욕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를 미워하기도 어렵고, 욕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으니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성희롱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먼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지? 피해자는 나인데 왜 내가 회사 동료들 눈치를 봐야 하지? 하루하루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물고기 같다. 성희롱 때문에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가해자에게는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가해자를 두둔하는 회사, 피해자를 기만하는 회사, 피해자가 눈치 봐야 하는 상황이 나를 병들게 한다.


나에겐 커다란 죄책감이 있다. 성폭력 가해자는 한 번만 가해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이 전에도 그랬을 것이고, 이후에도 그럴 것이다. 지금 내가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는 앞으로도 수십 년 인생에 걸쳐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성폭력 공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생고생을 시작해버렸다. 이 사건을 글로 쓰는 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 글은 사건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이 일이 끝난다면 언젠가 웃으며 말하고 싶다.


예전엔 내가 직장에서 성희롱을 겪었어. 그때 너무 힘들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힘을 보태줘서 이겨냈어. 다행히도 그 시간을 견뎌냈어.


또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답해주겠지.


고생했어. 잘했어. 그때 정말 힘들었겠다. 의미 있는 일이었을 거야. 고생했어.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여성폭력 추방의 날이고 제 월급날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