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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Dec 10. 2021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의 적! 그게 바로 나다 이거야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와 반나절을 함께 보냈다. 내가 가진 의식이 그렇고(?) 가진 경험이 그래서(?) 그런지 그 방향(?)으로 밖에 말을 해 줄 수가 없는 시간을 보냈다.


청소년에 대한 제 의식이요?

님들도 한 사람의 사람이고, 이제 다 컸고, 스스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있고, 가능하거나 방법이 있다면 부모님 통제에 무조건 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당신의 인생은 당신 것이고 제 아무리 부모라 한들 당신 인생의 방향, 가치관, 교우관계, 감정을 주물러선 안 된다고 생각하오. 그런 의식을 갖고 있는 게 나요. 의식인지 인식인지.


제일 싫은 건

청소년 사업한다면서 초면인 청소년에게 반말하는 사람이고


혼란스러운 건

나 같은 사람이 청소년을 향해 사용하는 존칭과 존대를 거절하는 청소년들의 반응이오.


선생님 제발 반말로 해주세요. 너무 불편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반말 써 주실 거예요? 네?


조금 어려운 게 있다면

내 자유로운 인생 - 대학원까지 나와 그 분야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모와 연을 끊고 애인과 함께 살며 정치활동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하는 인생 - 을 청소년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그 청소년들의 부모들에겐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오.


실제로 우리 엄마의 두 남동생들(내 삼촌들)은 내가 본인들의 자녀와 대화할 때 계속 옆에 있으려고 함. 절대 나와 본인의 자녀가 밀실에서 함께 있지 못하게 함. 자동차 옆자리에 타는 것도 싫어함. 애들 어린이일 땐 명절 때마다 그렇게 나한테 맡기더니 청소년 되니까 절대 안 맡김 ^^ 내가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야 너 애들한테 이상한 말 하지 마!"라고 함.


공부를 열심히 해야 . 연애나 노는  나중에  할 수 있어


아닌데? 아닌데? 공부를 해서 뭐해? 토익 800 넘고 외국에서 인턴하고 대한원까지 나오면 뭐해?  부질없는 것을 껄껄껄 

애인이랑 같이 사는  ?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엄청 행복한 일상이야. 그게  뭐가 어디가 잘못됐어?

착하게 살아서 뭐해? 부당한 일은 참지 말고  몫은 내가 챙겨야 . 아무도  챙겨 준다. 손해보고  필요 있어? 그럴 필요 없을걸.

남들 생각해서 뭐해? 남보다 중요한  나야.  눈치 보느니  눈치 보는  나아. 남들 시선 상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조금은 거칠고 불쌍한 청소년의 삶을 살았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친구와 버디버디를 하며 냉장고에 있는 소주를 꺼내 마시는 사람이었소.


중학생이 되어서는 부모님께 현금으로 받은 급식비로 노래방을 가고 점심을 굶었소. 학원은 등록만 해두고 가정폭력 피해자 친구들과 새벽 2시까지 화랑유원지를 배회하다가 경찰에게 경고를 먹곤 하였소. 예쁜 시계가 갖고 싶어서 친구와 팬시점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걸려서 지하실에 끌려가 뺨을 맞고도 부모에게 혼나는 게 무서워서 신고도 하지 못했소. 내 편은 항상 친구들이었소. 부모도 선생도 다 나 몰라라 했다 이거야~ 어른들이 눈 가리고 아웅 하면 나는 그저 쓰러지는 시늉만 해 드리면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이거야~


대학생이 되어서도 방황은 끝나지 않았소. 부모님이 내 이름으로 만들어둔 통장과 도장을 싹 챙겨서 가출했소.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술 마시다가 친구들과 헤어지기가 싫어서 공원에 누워서 아침 10시까지 퍼져서 잠을 자기도 했소. (지금은 그 친구들 누구였는지 기억도 안 남) 술을 너무 마셔서 몸이 힘든 날이면 잠시 길가에 누워 열을 식히는 낭만이 있는 삶이었소. 나만 취할 수 없다며 후배들에게 소주를 원샷하게 하는 폭력적인 삶이기도 했소.


쓰면 쓸수록, 문장 속 시점이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정말 못난 쓰레기 같은 삶이었구나 싶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지! 그 시절 내가 부끄럽고 안쓰럽지만 지금은 이렇게 글로 써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당당한가!


그때 내겐 저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현실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전혀 할 수 없던 시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운 삶.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서 뭐해? 누가 그렇게 하게 해 준대? 어차피 안 돼. 그냥 되는대로 오늘만 살자 이거야~


그다지 큰 사고(?)도 못 치고 그저 찌질하게 살면서도 어째 공부는 놓지 못했다. 언젠가 닥쳐올 탈출을 기다리며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대학은 가야지 생각하며 밤새워가며 공부했던 인생이 지금 보니 참 처절하고 안쓰럽다.


지금이나마 사람 구실하고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그때 그렇게 산 사람도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다'라고 말해줄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적어도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당당하다 이거야~ 그래! 당당하다 이거야!


그래서 청소년을 향한 내 이야기의 방향은 늘 이 방향이다.


부모의 영향이 지금 당신한테 너무 크겠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작용했던 이 힘이 너무 막강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겠지만, 결국 언젠간 끝날 거예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부모의 삶이 아니라 당신의 삶이에요. 남의 삶을 끝내고 내 삶을 시작해도 돼요. 원한다면 당신 마음속에 있는 아주 작은 불씨를 같이 찾아봅시다.


때에 따라서는 부모를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필요하다면 부모의 말을 무시해도 괜찮고, 스스로를 위해서라면 부모를 만나지 않고 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모든 부모가 훌륭한 사람인 건 아니에요.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아니에요. 당신은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더 좋은 사람, 더 훌륭한 사람도 많이 있어요.


나는 그저 당신이 당신으로 잘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내가 남이라 그런 거겠지만, 나는 님의 자유를 응원해요.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같은 얘기를 반복합니다.


언젠가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생기면 얘기해 줘요. 나한테는 님 한 명 돕는 거 하나도 힘 안 들어요. 내 걱정하지 말고 언제든 불러주면 기쁘게 대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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