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30. MON.
누군가의 단독 콘서트 자체가 처음이었다. 가끔 어떤 합동공연, 공개방송 같은 건 가봤지만 단독 콘서트라니! 감개가 무량하다. 콘서트에 다녀온 지 3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에일리의 노래를 듣고 있다. 지금도 에일리 목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
한 번 어떤 노래에 꽂히면 몇 개월 연속해서 그 노래를 듣는 편이다. 주로 리듬이 강하고 보컬이 멋진 노래에 빠진다. 최근에는 블랙핑크나 에일리 노래를 많이 들은 것 같다. 예전에는 빌리 아일리쉬, 아델, 비욘세를 많이 들었다. 아이유나 멜로망스의 노래도 좋아하지만 오래 들을 수는 없다. 한두 곡 들으면 꺼야 돼. 나랑 파장이 맞지 않는다고 표현해도 될까나. 파장이 잘 맞기로는 에일리만한 사람이 없었다.
콘서트에서 들은 에일리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음원 속에 갇혀 있지 않았다. 선명한 목소리는 계속 색을 바꿔가며 커다란 날개를 쫙 펴고 공연장을 자유롭게 누볐다. 나와 우리 모두를 통과하는 그 목소리가 내 심장을 꽉 움켜쥐었고, 내 몸 밖으로 훅 꺼냈고, 정신없이 흔들어서 혼을 빼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부드럽게 제자리에 끼워 두었다. 원래 모든 파장이 다 그렇다. 어떤 매질에는 저항 없이 통과해 버린다. 오늘은 그게 바로 내 심장을 통과한 에일리의 목소리이다.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응원봉을 휘둘렀다. 입술까지 내려온 눈물이 너무 짜서, 마스크가 푹 다 젖고 나서야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엥? 이게 웬 눈물이야? 도대체 왜 눈물이 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알고 싶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봐야 할까? "저는 왜 우는 걸까요?" 아니, 아니지. 질문이 틀렸다. "저기요, 저 눈물 흐르는 거 보이세요? 저는 분명히 안 울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아요. 이 눈물이 대체 왜 흐르는 걸까요?"
에일리에게 힘든 시간이 있었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까지 에일리의 몸에 대해 너무 많은 사람이 왈가왈부하기도 했었고, 꽤 긴 시간 동안 소속사 문제로 무대와 방송출연 기회에 제약이 있었고, 에일리 본인이 콘서트에서 말한 재작년 어머님의 별세까지.
그래서였을까? 그 힘든 시간을 통과해 이렇게 전국 투어 콘서트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웃으면서 노래하는 에일리가 무대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동한 걸까. 이런 게 연민인가. 내가 에일리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져도 되나. 나도 에일리처럼 힘든 시간을 잘 통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그럼 연민이 아니라 희망인가.
혹은 또 이 몹쓸 죄책감 때문인가. 에일리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지 어쩌는지 상관없이 나는 에일리 노래를 너무 잘 들었고 잘 따라 부를 수 있었고, 덕분에 정말 많이 울고 웃고 힘을 얻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에일리한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다. 그래서 미안해서 눈물이 흘렀나? 이제야 와서 미안해요. 엉엉엉.
아니면 내가 에일리한테 해준 게 있건 없건 상관없이 여전히 저렇게 너무나도 멋진 에일리를 보면서 역시 나 따위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 생각, 나는 먼지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라는 딴생각에 빠져서 눈물이 났나?
사실 에일리는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주지 않았다. 에일리가 주는 에너지는 정말 너무 위대했다. 이런 걸 그냥 모든 가수가 갖고 있는 에너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많지만, 감정표현을 잘하는 가수도 많지만, 노래를 잘 만드는 가수도 많지만 아무튼 에일리는 달랐다. 다르다고요.
새해계획을 나누면서 You can do~ 이렇게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너무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다들 새해계획 이루십사 응원해 주면서 Higher를 불러줬는데 나 진짜 너무 많이 울었다. 나한테 이런 응원이 필요했던 걸까. 콘서트에서 아티스트 얘기 들으면서 우는 거 뻔하지 않나? 울지 않으려고 머릿속으로 별 생각을 다 해봐도 에일리의 노래를 들을 때는 속수무책이었다. 저항할 수 없는 목소리. 그냥 나를 내려놓게 만드는 목소리.
퍼포먼스도 정말 장난 아니었다. 빨간색 탑이 인상적인 의상이었는데 무대가 끝난 뒤에 섹시컨셉 퍼포먼스라고 말해주더라. 본인은 민망하다고 하는데 나는 퍼포먼스 내내 너무 멋있다고 소리를 꺅꺅 질러댔다.
11년 전, 음악방송에서 에일리가 데뷔했을 때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Heaven을 부르는데 큰 눈에 큰 입에 시원하고 파워풀하게 부르면서도 어찌나 격하게 움직이는지. 저런 노래와 퍼포먼스가 라이브로 동시에 가능한 사람이 있다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지금도 가끔 그때 영상을 찾아보는데 관객석에 있는 사람들도 나처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노래를 너무 잘하고 퍼포먼스도 너무 멋있는데 어라 왜 나 이 노래 모르지? 나 왜 이 사람 오늘 처음 봤지? 이 사람이 신인이라고? 이런 표정.
앵콜은 한 시간이나 진행됐는데 진짜 미쳤더라. 아예 본인 노래를 EDM 메들리로 가져와서 우리를 전부 일어나게 했다. 방방 뛰며 에일리 노래를 들으니 스마트워치의 걸음수가 콘서트 전보다 3 천보가 늘었더라. 나 정말 3천 번 뛴 건가? 아, 응원하면서 손을 3천 번 휘둘렀나.
OST 메들리도 어찌나 감동인지. 그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더라. 무반주로 신청곡을 불러주는 시간도 있었다. 에일리 노래보다는 다른 가수의 노래를 에일리 버전으로 듣고 싶은 사람들의 요청이 많아서 그게 좀 아쉬웠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활동할 테니 콘서트 때 부를 에일리의 노래가 더 많이 늘어나겠지 싶어서 앞으로를 기대하게 되더라.
그냥 미친 것 같은 하루였다. 모든 게 잘못되더라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이 목소리를 오래오래 듣고 싶다. 나중에 20주년, 30주년이 지나 40, 50, 60... 디너쇼로 함께 하는 꿈을 꾼다.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데 갑자기 기도 하고 싶어 진다.
부디, 에일리를 잃지 않게 해 주세요.
에일리가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노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저도 오래오래 에일리 노래 들으면서
잘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멘.
---
어젯 밤에 쓴 글을 다시 보니 이런 게 사람들이 말하던 콘서트효과인가 싶은 기분이 들어서 겸연쩍다. 콘서트 티켓비에는 이후 한 달 동안 콘서트를 곱씹으며 행복해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 듯하다. 출근길도 에일리와 함께하는 중이라 행복하다. 제가 자의식과잉 같나요? 맞습니다. 자의식과잉.
굉장히 좋음, 좋음, 편안함, 아쉬움, 나쁨 다섯 개의 그라데이션 중 하나를 선택해 감정일기와 함께 기록합니다. 어떤 그라데이션이 어떤 감정의 단계인지는 저만 아는 비밀입니다. 근데 아마 앞으로 쌓여갈 감정일기를 보시면 누구나 정답을 맞히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