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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Feb 23. 2023

정병러 상담자와 정병러 내담자

요즘 복용하는 ADHD약이 내 일상을 훨씬 나아지게 만들어주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ADHD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어떤 시간들은 분명 극심한 조울증(양극성장애), 불안장애를 갖고 있었고, 요즘은 거기서 조금 비껴 서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ADHD인지, 조울인지, 우울인지, 불안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한 명의 정병러임은 틀림이 없다.


정병러 : 정신질환자가 스스로를 부르는 말 중 하나


이런 내가 상담소라는 공간에서 다른 수많은 정병러들을 만나며 '나 이래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생기는데.


1. 성폭력 피해 경험 이후로 첫 정신과에 내방한 케이스


사건 이후로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변화를 꾀해봤지만 변화하지 못했을 때, 막다른 길에서 약물치료를 선택하게 된다. 이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지막 남은 방법으로 막다른 골목에서 울며 겨자를 먹는 선택일지언정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약물복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볼 때 벼랑 끝 선택도 선택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약을 선택하지 않고 그냥 벼랑 너머 저편으로 떠나는 내담자도 있으니까.


이 경우의 많은 내담자들은 선입견과 싸우게 된다. 정신과약을 계속 먹다가 약에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 약 끊을 시기를 놓치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의사보다 약 복용하는 환자가 병에 대해 더 잘 아니까 처방약 중 필요한 약만 쏙 빼어서 복용하는 게 낫다 등 약을 오용하거나 남용하거나 셀프 단약하려는 모든 시도가 정신과약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약을 줄이거나 끊었어도 별다른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뭐, 나도 아무 말 안 한다. 뭐 어쩌겠나. 나 조차도 정신과 약을 복용할 때마다 '으아 내가 바로 그 정신병자인 거야?' 이런 생각이 올라오던데. 이물감이라고 해야 할까. 내 경우에 이런 생각은 약물치료 초기에 제일 많이 들었으며 스스로 질환을 인정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약물 오남용으로 병을 키우는 상황인 듯 보일 때가 있다. 술과 약을 함께 복용한다던지, 증세가 더 심해지거나 추가되는 경우이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약을 잘 챙겨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교를 한 판 하게 된다. 설교가 일방적이 될 때는 내 경험을 꺼낸다. 과거 나 또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로 힘든 시간을 겪으며 정신과 약을 복용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그렇게 나를 고백하고 나면 내담자들이 조금은 수긍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것도 수긍이지.


선생님처럼 '밝고' '멀쩡한' 사람도 이런 일을 겪으며 정신과 약을 복용하게 될 수 있군요. 이 사건이 그렇게 큰 일 이군요.


'글쎄요. 저는 밝지도, 멀쩡하지도 않은데요.' 말을 삼킨다. 그 이후에는 본인들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알아서 잘 챙겨 드시는 것 같다. 어쩌면 이제 나한테는 약을 잘 복용하고 있다고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2. 원래 정병러인데 성폭력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추가된 경우


정병러를 상담소에서 만난다? 정말 이상한 동지의식이 생긴다. 연결감이라고 해야 하나.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상한 연결감은 서로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약물과다복용 자살시도 같은 심각한 일에 대해 얘기하며 병원비는 누가 냈는지, 얼마가 나왔는지를 공유하기도 하고 저번에 입원한 폐쇄병원 후기를 나누며 다른 폐쇄병원 후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많은 상담샘들 얘기를 들어봤지만 본인도 정병러인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자신의 병을 공개한다니, 이래도 될까?


아마 일반 상담이론에서는 상담자가 자신을 개방하려면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 최소한의 정보만 개방하라고 할 것 같고, 여성주의 상담에서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나도 겪고 있다면 개방하고 공유하고 함께 울어도 된다고 할 것 같다.


어차피 정답 없는 질문이지만 내가 택하는 방식은 늘 똑같다. 내 앞의 내담자에게 당신 혼자 이 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가 되는 쪽.


내세울 거 하나 없는 저도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고 있고요, 님도 지금 많이 힘들겠지만 곧 일어날 수 있을 거예요. 일단 쉬어요. 일단 숨 쉬어요. 괜찮을 거예요.


나라는 상담자, 이래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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