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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Aug 30. 2023

가족 없어도 안 망해요.

[이탈] 離脫 떠날 리, 벗을 탈
어떤 범위나 대열 따위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떨어져 나감.
[탈출] 脫出 벗을 탈, 날 출
어떤 상황이나 구속 따위에서 빠져나옴.
[탈출] 敓出 억지로 빼앗을 탈, 날 출
상자 따위가 파손되어 그 안에 들어 있는 물질이 비어져 나옴.


우리 탈탈탈에서는 스스로를 탈가정청년모임이라고 부르면서도 [탈가정]이라는 단어에 정착하지는 못했다. 우리를 설명하는 보다 나은 단어가 있을 거라며 헤매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이탈했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탈출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탈출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구속에서 빠져나온 경우이고 두 번째는 상자가 파손되어 안에 있는 물질이 비어져 나온 경우를 말한단다. 단어 하나를 풀이할 때마다 여러 명의 얼굴이 생각난다. 


[가출] 家出 집 가, 날 출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감.
[일탈] 逸脫, 편안 일, 벗을 탈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부모님이 사과하면 가족에게 다시 돌아갈 거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가출과 뭐가 다르냐 묻는다. 그건 그냥 너의 일탈 아니냐며. 글쎄, 꼭 달라야 하나?


아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가족을 버린 사람은 너 아니냐고 묻는 것 같다. 편안함에, 복에 겨워 잠시 잘못된 행동을 한 것 아니냐고. 결국 다 네가 선택한 일이니 네가 책임질 일 아니냐고. 나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걸까? 다그치는 사람들의 눈빛이 매섭다. 이런 질문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날에는 바람이 세게 부는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책임을 진다는 건 어떤 걸까? 탈가정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 소위 징징거리지 않는 것? 


나는 징징거리지 않았다. 여기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그저 말할 뿐이다. 그러니 가정을 기본 단위로 한 현행 복지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이런 주장이 불편한 것 같던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가족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져서 결국 국가가 무너질까 봐 걱정하시는 걸까?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을 거역한 지독한 파렴치한들이라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주는 걸까? 혹은 자신 또한 한 명의 부모로서 내 자식이 어느 날 내게도 이별을 고할까 봐 두려워하시는 건지?


나는 나를 책임지고 있다.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응원하고 나를 사랑하려 노력한다. 내게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주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다. 


혹은 내게 주어진 가족을 책임지라는 건가? 그게 가능할까?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서로 독립된 개별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건, 어떻게 나를 대하건 내가 강요할 수 없고 바꿀 수 없었다. 성인이 된 후 10년 넘게 노력했는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건 자신이라는 진리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었다. 바뀌지 않으려는 사람을 두고 내가 뭘 어떻게 더 책임질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게 뭘까? 그냥 참고 견디며 부대끼고 살아가는 것?


가족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런 선택이나 희생이 쓸모없다고 생각한 적 없다. 가끔은 아름답기도 하다.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희생하는 것조차 무의미다고 생각하며 탈가정을 감행하게 된 건 아니다. 나는 내 가족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고, 가족들도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가족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길 바랐다.


[탈가정]이라는 단어에서 집중할 부분은 [탈]이 아니라 [가정] 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내게 고백하길, 자신은 탈가정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가정에 소속된 바 없었다고 표현했다. 아차차. 어쩌면 우리조차도 [가정]이라는 단어를 너무 안일하게 해석했던 게 아닐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게 폭력을 당한 사람, 아버지가 어머니를 너무 때려서 매일매일을 공포와 불안 속에서 보내야 했던 사람,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 먹고 씻는 기본적인 것조차 학교에 가서야 배울 수 있었던 사람... 우리들이 있었던 곳을 과연 [가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탈가정]이라는 단어를 탈가정 당사자가 만들었는지 타자가 만들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탈가정]이라는 단어가 불편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떤 멋진 이름이 생각나는 건 아니다. 뭘까?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름은. 


탈가정청년마다 탈가정 계기는 모두 다를 것이다. 물리적 폭력, 정서적 폭력, 성폭력, 차별, 착취... 집이 가난하다고 탈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가난함 속에서 어떤 폭력, 차별, 착취가 있었을 거라 감히 예상해 본다. 이 모든 탈가정 계기는 운석처럼 외계에서 지구에 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우리 일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렇기에 나의 탈가정 고백을 듣는 사람들 몇몇은 자신 또한 가정폭력과 차별과 착취를 겪으며 가족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기도 하는 거겠지. 맞다. 누구나 겪는 일. 겨우 누구나 겪는 일 가지고 유난 떨며 떨어져 나온 사람들.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 한 끗 차이를 누군가 알아주면 좋겠다. 이리저리 부대끼는 가족들이 천지삐까리임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사람들은 원가족과의 이별을 선택했을까. 왜 우리는 그렇게 남들처럼 부대끼며 살아갈 수 없었던 걸까. 모든 탈가정청년이 각자의 답을 하고 있으며, 나한테도 내 답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음식은 몸에 해롭다. 아름다운 자연이 건강과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해롭다. 그뿐이다. 계속 해를 입으며 가족과 부대끼며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다. 혹시 지금 탈가정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타인보다 스스로를 더 존중하는 선택을 감행하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러나저러나 삶이 힘든 건 마찬가지이지만 지금보다 행복하게 힘들 수 있다. 적어도 나는 탈가정하기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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