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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May 14. 2019

친구가 자살하려고 해요.

전 어떻게 해야 하죠?


보라야, 나는 죽으려고.
내가 죽고 나면 부고장이 갈 거야.
재산은 얼마 없지만
시민단체에 기부해줄래?



저에게 유언을 남기는 친구 A가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에요.

여러분도 이런 친구가 있으신가요?



죽으면 어떡하지?

며칠 동안 잠도 잘 못 자고 전전긍긍했습니다. A가 오늘 밤에 죽으면 어떡하지? 내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A가 죽었다고 하면 어떡하지? 며칠이나 A네 집 근처를 서성이고, 밤이 되어 잠을 때는 휴대폰을 꼭 쥐고 잤어요. 그러면서도 막상 A에게 연락이 오면 받지 못했습니다. 죽었다는 연락일까 봐 겁이 났어요.



친구가 죽고 싶다고 할 때,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요?

①24시간 붙어있기

자살예방센터에서 들었는데요. 자살 시도라는 게 1년 내내 이어지진 않는다고 해요. 짧으면 며칠이나 몇 시간, 길면 한 달 정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나 자살시도가 이어진대요. 그 시간 동안 곁에 누군가 사람이 있으면 자살시도를 하지 않는대요. 물론 화장실도 쫒아 갈 정도로 계속 붙어 있어야 모든 순간을 막을 수 있겠지만요. 그래서 이 방법은 자살예방센터에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위험하다고 해요.



②주변에 도움 요청하기

주변에다가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 친구한테 더 영향력 있는 친구의 말이라면 듣지 않을까? 그 친구의 애인, 아니면 선배, 선생님, 교수님처럼요. 막상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니 이게 쉽지가 않은 거예요.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제가 어렵듯이 다른 사람들도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배운 적 없기는 마찬가지잖아요. 주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들이 번갈아 전화해 A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 통화 내용에서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즉각적인 상황이 있다면 그 상황에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뿐이더라고요.



③자살예방센터 전화하기


친구가 매일 죽겠다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설득할 수 없습니다.

제가 A를 살릴 수 없대요. A가 인생에 어떤 문제를 겪고 있든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대요. 그 누구도 '죽지 마'란 설득으로 타인의 자살을 예방할 수는 없는 거래요. 감기 걸린 사람을 설득으로 낫게 할 수 없듯이요. 이 얘기를 들으니까 저는 조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아, 내가 A를 살릴 수 없구나. A가 죽더라도 내 탓은 아니구나.' 이런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치료가 필요합니다.

자살을 계속 시도하게 되는 것은 질병이라고 안내를 해주셨어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영역이래요. 혹시 A가 치료를 받고 있지 않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강제적으로 치료를 받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A가 병원을 거부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혹은 병원의 도움을 받고 있음에도 그것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텐데 제가 뭐라고 그 친구를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겠어요?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단계까지 오니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라고 느껴졌어요.


자살협박은 거절하세요.

죽으려는 사람이 주변 사람에게 '나는 죽으려고 한다'라고 계속적으로 말하는 걸 자살협박이라고 한대요. 자살을 예고하거나 암시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일컫습니다. 자살협박은 타인을 힘들게 합니다. 주변 사람 입장에서는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괴로워요. 자살예방센터에서는 A에게 이렇게 요청해보라고 제안해주었어요.


너의 죽음을 나에게 예고하지 말아 줘.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괴로워.

죽어도 괜찮아.

저는 이렇게 A가 죽을까 봐 막 전전긍긍하고 있었어요. 이때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제 친구 B의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B의 친구 '양초'에게 힘든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고요. 이 상황에 대한 B의 대응은 저와 완전히 달랐어요. 너무 인상적이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요. 다음은 자살위기에 처한 B의 친구에게 B가 건넨 말입니다.


죽어도 괜찮아. 나는 네가 살아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게 뭐든 네가 해도 괜찮아. 나는 그래도 네 친구고 그래도 너를 사랑할 거야.

네가 만약에 자살시도를 하고 거기서 성공을 한다면, 그래서 네가 죽는다면 나는 많이 슬플 것 같아. 그래도 괜찮아. 버텨볼게. 이겨내 볼게. 그 시도가 실패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실패했을 때는 다시 돌아와서 나에게 말을 걸어줘. 그러면 난 또 반갑게 너랑 게임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그러고 싶어.

네가 뭘 해도 괜찮아. 살아 있어도, 죽어 있어도 너를 사랑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다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나중에 양초에게 물어보니 B의 이 말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고 해요. 더 이상 외롭지가 않았고, 뭘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졌대요. 덜 외로워졌다고 하더라고요.


B가 양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아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죽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방치가 아니에요. 저는 A가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데 그쳤다면 B는 자신의 두려움보다 양초의 마음을 더 존중하려고 노력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삶이 존중받으려면 죽음도 존중받아야 된다는 말처럼요. 저도 B처럼 말하고 싶어요. 홀로 힘든 밤을 보내고 살아 돌아온 친구에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살 시도라는 말도 있고
자살기도라는 말도 있지만
자살사고라는 표현을 쓰기도 해요.


이미 제 친구 A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모두 지워진 상황인지도 몰라요.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하나 남은 선택지가 자살인 거죠. 이런 경우 제 친구가 100% 자신의 의지로 자살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자살사고라는 말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곁을 지킨다는 것

친구 곁에서 친구의 속마음을 듣고 위로하는 것. 어쩌면 할 수 있는 일이 그뿐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할 일은 충분한 거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에는 친구의 곁을 지킨다는 것이 너무 힘들고 버겁게 느껴질 수 있어요. 저를 포함해서, 지금 친구가 죽을까 봐 걱정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여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어요.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영상으로 보기 ▶  https://youtu.be/Hg7tXdj9h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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