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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Jan 26. 2020

내가 눈물 셀카를 찍는 이유

난 너에게 어떤 환경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식구와 마주칠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떤 식구와 마주칠 때면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깊숙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진다. 어떤 식구와 마주칠 때면 의미 없이 사사로운 장난을 주고받으며 꺄르륵 함께 웃고 싶다. 어떤 식구와는 천장을 보고 나란히 누워서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싶다.

우리 식구들은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24명, 24개의 우주가 공존하는 셰어하우스 인생살이 10개월 차. 서로가 서로의 삶에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다른 식구들에게 좋은 풍경이 되고 싶다. 


내가 지향하는 '좋은' 관계란

힘들 때 곁에 있는 관계다. 좋을 때 좋은 관계, 서로 꽃 피울 때 꽃 따 먹는 관계는 지양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 더 살아있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더 살아있는 나, 깨어있는 나, 열려있는 내가 되고 싶었다.


나는 식구들에게 좋은 환경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는 어떤 고민도 편하게 꺼낼 수 있기를 바랐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는 듯,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그저 너라는 사람의 상황에 맞춰서 듣기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우리 셰어하우스에서는,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와 너와 우리가 동등한 존재라는 것,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마땅한 소중한 존재라는 점이 서로의 인식에 공유되기를, 그렇게 서로를 대우하고 대우받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차별 없는 셰어하우스를 바랐다. 나이나 성별, 학력이나 벌이, 출신지역에 대해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을 응징(?) 하기도 했다. 쉽지 않았다. 위계 문화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은 나이 한 살, '빠른 출생'까지도 따져가며 첫 만남에서 서열을 정리했다. 성별이나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 장애인과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이 많이 일어났다. 조언이나 충고라는 이유로 상대방의 과거를 판단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런 발언이나 행동을 막으려던 내 치열하고 이기적인 노력은 미숙하고 불행했다. 내 의견은 늘 일부에게 동조받았고, 다수에게는 불편한 이야기로 취급되었다. 


성공이나 실패 같은 결과보다는 그 과정과 노력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건 네가 잘했네.", "그건 네가 잘못했네" 같은 평가 말고 네가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걸 옆에서 보는 내 마음은 어땠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잘 해내지 못했다. 아마 나 조차도 이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식구들에게 좋은 환경이 되고 싶었던 나의 셰어하우스 살이는 얼마나 성공하고 얼마나 실패했을까?

나의 성공, 실패와 상관없이 내 노력을 귀하게 여겨줄 사람이 우리 집에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있다! 우리 집에는 나를 사랑하는 식구들이 있다. 식구 Y는 내가 숨만 쉬어도 예쁘다고 말해준다. 잠에서 갓 깬 모습도 귀엽단다. 부스스한 머리에 부은 얼굴이 귀여울 리가 없다. 처음에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요즘 이런 말을 들으면 그냥.. 식구 Y가 나를 사랑하나 보다 싶다.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싶다. 식구들은 내가 모기만 잡아도 오늘 하루가 성공적이었다고 박수갈채를 보내준다. 벌레가 많이 나온 여름에 박수갈채받을 일이 많아서 행복했다고 고백하면 식구들은 기겁하겠지?


괜찮다고 말해주는 식구들이 있다. 내 몸이 물에 담가 둔 미역처럼 커져가던 어느 날, 백화점 쇼핑에 실패하고 축 쳐져서 집에 들어왔다. 내 표정을 본 식구 R은 "내가 찾아줄게! 입고 싶은 옷이 뭐야?"라고 물어봐주고, 폰을 켜서 내 옷을 함께 찾아주었다. 짝사랑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느라 밥을 못 먹고 살이 빠지고 있는 나에게 "보라, 나는 보라가 살이 쪄도 빠져도 좋아. 그걸 기억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나의 기분을 살펴주는 식구들이 있다. 짝사랑하는 거 괜찮냐고 물어봐주거나, 밥을 잘 못 먹는 나에게 그렇게 못 먹어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해주거나, 이제 월급을 받고 있는 나의 생활변화가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식구들. 옷 때문에 고민할 때면 함께 옷을 고르러 가주고, 기분이 안 좋아 침대에 파묻혀 지낼 때면 나를 꺼내 밖으로 데리고 나가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식구들 덕분에 나도 내 기분을 살펴보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런 식구들 덕분에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상황을 포기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원할 때만 노력해도 괜찮단다. 기분이 좋을 때에는 그 기분을 마음껏 누려도 괜찮다는 것도 배웠다. 좋은 기분을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도 괜찮다는 것도.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아.


내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를 식구들에게 받을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버린다. 우리 집에서 불거진 성폭력 이슈 때문에 내가 숨을 허덕이고 있을 때 자진해서 자리를 마련한 식구 M을 안고 눈물이 펑펑 났을 때 그랬다. 여러 가지 고민들로 바쁘고 힘들게 지내던 식구 Y가 그 자리에 와서 발언해줬을 때 그랬었다. 지금껏 아무 말 않던 식구 M이 또박또박 의견을 낼 때 그랬다. 식구 D, 식구 S, 식구 J가 성폭력에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그랬다. 


칭찬 공유회에서 식구 S에게 칭찬을 받을 때 그랬다. 식구 H가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나에게 꺼내어 준 날, 갑자기 셰어하우스를 떠나게 된 나에게 식구 I가 손편지를 써줬을 때 그랬다. 식구들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났고, 그러면 셀카를 찍어서 다시 그 친구에게 보냈다. (ㅋㅋㅋ)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왜 감동이냐고? 아마도 내가 누군가로부터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난 그렇게 애타게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했던 게 아닐까? 이 메시지가 나에게 되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말들을 나에게 해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고맙고 부끄러운 마음을 어떻게 하지 못해서 셀카를 찍어 보냈다. 마음이 통했다고 말해도 되는 순간인지, 답정너(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너는 말만 해)인 내가 드디어 답을 들은 순간인 건지 모르겠다. 그저 확실한 것은 그럴 때마다 내 노력이 인정받는 느낌이었다는 것.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는 내 메시지에 대한 응답처럼 들렸다는 것이다. 


아마 내 노력이랑은 상관없이 우리 식구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마음들을 세심하게 주고받을 줄 아는 다정한 사람들, 지난하고 치열한 각자의 일상 속에서 서로의 기분을 챙길 수 있는 대인배들. 그런 그들이 내게 주어졌으니 내가 2019년 한 해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 나일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오늘은 꼭 말하고 싶다. 


이 집에 살기 전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환경이 되기를 원한적 없었다. 인생이 잘 풀려도, 잘 풀리지 않아도 타인과 사회, 제도와 문화를 탓했다. 무조건 탓해도 되는지 아니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남 탓을 베이스에 깔고 나를 세웠다.


지금도 세상이 기울었고, 잘못되어있다는 생각은 다르지 않다. 그저 이 세상에서 나를 세우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예전처럼 세상도 돌고, 나도 도는 정신없는 상황은 이제 끝내야지.


요즘 나는 콜센터에서 성희롱을 당해 고생하고 있다. 스스로도 고백하기 어려운 이 힘든 날들을 버텨내는 것은 누군가에게 좋은 환경이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문제는 제기했지만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는 나의 답답함이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낸다.


나를 믿어준 사람에게도, 나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함께 일하는 우리끼리도, 우리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왕이면 서로와 각자의 마음을 챙기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이번에 불어닥친 힘든 시간에도 나는 우리 팀 사람들에게 좋은 환경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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