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 만들기

글 쓰는 방법을 잊어버렸어

by 보라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주제는 몇 개 생각이 나지만 그 주제를 글로 풀어낼 힘이 없다. 팔도 아프고 눈도 어둡고 머리도 안개 낀 것 같고...


글을 잘 쓸 수 없을 것 같은 날이다. 이런 날엔 주문을 외워본다.


내 글에 아무도 관심 없어.

내 글에 아무도 관심 없어.

내 글에 아무도 관심 없어.


아무도 내 글 기억 못 해.

아무도 내가 내 글에 뭐라고 썼는지 몰라.


일단 써 내자.

일단 쓰고 내보내자.

마음에 안 들면 수정할 수 있어.

틀리면 사과할 수 있어.

사람이니까 틀릴 수 있어.

뭐든 다 맞을 순 없어.


주문을 외우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누군가 내 글 때문에 상처를 받진 않을까.

누군가 내 글이 틀렸다며 나를 비난한다면 어떡하지.

언젠가 내 글과 반대되는 행동을 내가 했으면 어쩌지.

그걸 누군가 기억해 내면 어쩌지.

이러다가 내가 매장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다시 주문을 외운다.

아무도 내 글에 관심 없어.

틀리면 고칠 수 있어.

상처 주면 사과할 수 있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말자.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잖아?

그럴 수 있지.

난 어떤 면에서는 부족하니까.

그러면 또 사과할 수밖에 없지.

그리고 또 노력할 수밖에 없지.


괜찮아.

그냥 써.

괜찮아.




이렇게 주문을 외우며 겨우 마감날짜를 지켜냈다. 무슨 글 하나 쓰는데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걸까. 다른 사람도 다들 그렇게 마감하고 있는 걸까?


어떤 이슈에 말을 얹어본 게 너무 오래된 것 같다. 뉴스도 안 보고 세상과 동떨어져서 산지 꽤 오래된 것 같아. 그래도 이번 이슈는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에 말을 얹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지, 사실 말을 얹는 건 아니다. 겨우 얹는 척을 해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마감을 해놓고 나서 페이스북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도 말 얹을 거야!!!!!!!!!


과도하게 힘을 내며 느낌표를 잔뜩 썼더니 그제야 웃음이 난다. 손가락 이슈가 아니라 직장 내 페미니스트 혐오에 대해서 써 보았다. 맞게 쓴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사실 이 사건의 본질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라 좀 애매했다. 애매한 글이지만 시류를 따라가 보고자 썸네일에 손가락 이미지를 썼는데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나도 세상에 발맞춰 나가는 느낌이라 그런가...? 애처롭다. 사실은 전혀 발맞췄다고 보긴 어렵다. 언론에서 다루고 여성단체에서 시위까지 했는데 이제야 글을 쓰고 앉아 있는 건 콩고물에 손을 묻히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그래도 내 글은 어디로든 널리 널리 퍼져가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니까 누군가는 이런 글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내 비록 몸은 집에 갇혀 있지만 내 글, 너라도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라~~~


그렇지만 자꾸만 글을 아사모사하게 쓰는 것 같아서 좀 죄송스럽기도 하다. 누구한테 죄송스러운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송구하다. 부족해서 송구하고 노잼이라 송구하다. 그냥 나, 민보라가 쓰는 글이면 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을 것 같아서 네이버에 쓰는 글은 페미니즘과는 조금 거리를 둔 사람인 척하며 글을 쓰고 있다. 부캐 같은 건가? 나름대로의 재미와 희열이 있다. 연습이 된다는 느낌도 있고.


글을 잘 쓰려는 마음이 없진 않다. 그래서 매번 내 글에 실망한다. 평소에도 그랬는데 심지어 오늘은 논리마저 의심해야 하는 글이 나와서 더욱 미안하고 송구하다. 글을 읽어주실 분들께 사과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렇다면 그 글은 내보내지 않는 게 맞았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결국 내보내고 피드백을 받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또 한 발자국 앞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금 이 글이 내 수준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별다른 도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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