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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Jul 13. 2019

연애, 먹고 싶은 맛

아는 맛, 모르는 맛, 새로운 맛

먹어봤자 아는 맛이에요.
또 먹어서 무얼 하겠어요?


옥주현. 예전에 핑클 활동을 마무리하고 뮤지컬로 무대를 옮기면서 체중을 감량하고 방송에 나온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요는 먹지 말라는 말이지? 이 말은 내 기준에서 어불성설이다. 아는 맛이니까 생각이 나고 먹고 싶은 것이다. 아는 맛이니까 먹지 말라고? 모르는 맛을 먹고 싶어 할 수는 없잖아! '새로운 맛'은 먹어보기 전까지 '모르는 맛'일 뿐인걸. 


뭘 먹고 싶어?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내가 아는 맛 중에서 답할 수밖에 없다. 모르는 맛은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나에게는 연애도 비슷하다. 어떤 사람을 보면 이 사람과의 연애가 머릿속에서 마구 상영된다. 이런 연애가 되겠구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이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로 흘러가기도 하고 '오우, 이 사람과는 절대로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최근 나에게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나타났다. 덕분에 내 머리는 자동으로 시뮬레이션이 마구 돌아간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시뮬레이션 보고서가 쭉쭉 뽑혀 나온다. 



이 사람과의 연애 시뮬레이션 보고서. 

조용하고 한적하고 차분한 연애. 큰 소리 나는 웃음 없이 미소를 머금은 연애가 될 것이다. 내 앞에서 뿐만 아니라 혼자 있을 때에도 타인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 같은 안전한 사람. 누가 뭘 해도 받아줄 것 같은 사람. 자신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너는 그렇구나' 인정해줄 것 같은 사람. 페미니즘이네 이퀄 리즘이네 같은 사상이나 네이밍에 관심 없이 모두에게 조금 뜨겁게, 하지만 조용하고 묵직하게 내려앉는 사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 같은 사람. 그런 그 사람을 바라만 봐도 나는 기분이 좋아지겠지. 


과거 몇 번의 연애 중 인생 연애라고 부르고 싶은 연애가 있다. 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고, 기다려주고, 만지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손길과 눈길에도, 코끝을 따라가면 다다르는 그 지점에도, 자신의 그림자에도,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모든 곳에 내 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보면 그때의 나와 그때의 연애가 시뮬레이션된다. 


이제 그런 연애는 존재가 불가능하다고 스스로를 포기시키던 나였다. 그랬던 나에게 그는 나를 응원해주는 존재로, 존재를 증언하는 존재로,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희망으로 작동한다. 또 같은 패턴에 빠진 나는 또 한 번 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될까?


누군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고 위험하다. 필연적으로 위험하기도 하다. 온갖 이미지와 판타지를 아무 죄도 없는 이 사람에게 씌운다. 아직도 내가 그를 보는 것인지, 그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그를 본다. 천지분간도 못하는 나라는 사람, 오늘도 답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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