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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Jul 20. 2019

너에게 닿고 싶어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가까이에서 걷고 싶어. 대화를 나눌 땐 더 가까이서 눈을 마주치고 싶어. 더 자주 보고 싶어. 너랑 더 친해지고 싶어. 너를 더 알고 싶어. 네가 궁금하고 신경이 쓰여. 너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너는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걸까. 지금의 너에게 영향을 준 사건은 뭘까, 사람은 누굴까. 오늘 넌 어떤 생각을 하며 보내고 있을까.


시선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 생겼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덕분에 매시간 고민하게 된다. 언제 만나자고 할까, 지금 연락해도 될까? 어딜 가자고 해야 흔쾌히 승낙을 받을까, 뭘 어떻게 해야 부담을 덜 줄까. 참 생소한 고민이다. 고민해도 답을 알 수 없는 고민이다. 고민 끝에 전략이란 걸 세워보지만 정답은 찾을 수 없다. 가설은 매분 매초 틀리고, 너의 반응에 따라 내 텐션은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거린다. 어떤 선택이 더 나은 선택일지 난 아마 영원히 알 수 없겠지. 뭘 쥐고 뭘 포기해야 할지 조차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손 끝에서 빠져나간다. 


바쁜 머릿속에서 과거를 회고한다.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열 번도 안 되는 내 과거의 연애에서 난 항상 누군가에게 선택되었다. 나는 제멋대로 굴었고, 그런 나를 눈에 담기 시작한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주면 연애가 시작되는 식이었다. 


어딜 갈지, 언제 만날지 늘 제안을 받았다. 좋은지 싫은지 그저 애매하게 표현하면 이루어졌다. 내 의사는 말로도 거의 꺼내지 않았다. 눈빛, 손짓, 무관심 단 한 번이면 원하는 대로 진행됐다. 그런 연애가 좋았다. 우리 연애가 자랑스러웠다. 그런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오해했다. 내 마음을 얻으려고, 나를 더 알아보려고, 나랑 더 오래 같이 있으려고, 나랑 더 좋은 추억을 남기려고 전전긍긍 고민하는 모습을 '귀엽다'라고 치부했다. 


사실은 그 사람 혼자 두 사람 몫의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연한 것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고백했던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하며 나를 기다렸던 거구나! 새삼스럽고 고맙고 감동적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저는 이제야 이런 고민을 시작해요. 


예전의 나였다면?

탱탱볼처럼 어디로 튀어나갈지 몰랐던 과거의 나는 퍽 나쁜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슬쩍슬쩍 가 닿으며 경계를 마구 침범하는 방식.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경계는 나에게 농락당했다. 연애 앞에서 나는 타인의 경계를 마음대로 잡아당기고 만지작거리는 악마가 되었다. 마침내 경계가 힘을 잃고 구멍이 뚫리면 나는 의기양양하게 그를 침범했다. 그는 사랑하는 나로부터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어야 했고 나는 그 상처를 사랑의 증거라 여겼다.


이제는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다. 사소한 것도 물어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결정하고 싶다. 너는 어떤지 확인하면서, 나는 어떤지 느껴보면서. 


요즘의 나는 일이 잘 안 된다. 생각이 너무 많다. 네 생각도 하고, 내 생각도 하고, 우리 생각도 한다. 좋은 곳, 맛있는 것, 가고 싶은 곳마다 너라는 꼬리표가 붙어 생각이 길고 복잡해진다. 머리만 바쁜 게 아니라 손도 바쁘다. 지금 연락을 할까 말까. 답장이 지금 왔을까 아직 안 왔을까. 휴대폰에 뜬 너를 보면서 웃었다가, 당황하다가, 고민해야 하는 내 마음도 덩달아 바쁘다.


너를 본다. 

난 너에게서 뭘 보는 걸까? 내가 보는 사람은 진짜 너일까, 내가 만들어 낸 너일까. 너의 어디가 좋은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할 말이 아주 많다. 네가 나에게 물어봐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너는 나를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넌 연애에 관심이 없고 다른 일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니까. 그런 너에게 난 아마 거절당할 것이다. 착한 너는 거절하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이미 너의 눈빛과 표정이 네 마음을 말해주는걸. 이제 네 마음은 너무 확실해 보여서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난 내 마음을 말한다. 이건 말해야 해. 물론 거절당하는 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는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로 통증이 있다. 숨 쉴 때마다 갈비뼈 안 쪽에 느껴지는 퍽퍽하고 먹먹한 느낌. 이 두려움은 진짜다. 너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는 매일 이 두려움 앞에서 바들바들 떤다. 하지만 이나마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난 오늘도 몇 번의 거절을 당한다. 이 시간들도 곧 다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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