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입원 일기
많이 앓았다. 사고난지 5일 만에 찾아온 통증이 드디어 나를 지배했다. 마음이 불편하다. 통증이 너무 외롭기 때문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알아줄 수 없는 혼자만의 고통. 이 고통은 교통사고 이후에 내 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다가 시도 때도 없이 폭죽처럼 터진다. 고장 난 두더지 게임기 같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고통들은 매번 모양도 크기도 표정도 다르다.
가끔은 숨 쉬는 게 무서울만치 아프고, 또 가끔은 또 웃으며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로 괜찮다. 오늘은 얼마나 아팠냐면 숨 쉬면 몸통이 터져버릴 것 같이 아팠다. 몸이 터질까 무서워 숨을 작게 쉬었더니 이번엔 숨이 모자라더라. 곧 죽을 것 같이 숨을 토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꽤 약한 교통사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지경이다. 큰 교통사고 피해자들은 얼마나 많이 아플까, 상상을 벗어난다. 어떤 것도 내 것 같지 않았던 삶에서 이상하게도 이 고통만은 오롯이 내 것 같다. 내 고통, 내 책임. 나는 내 고통에 대해 얼마큼의 책임을 갖고 있을까?
그날 저녁 교통사고가 나기까지, 요즘 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한 달째 식욕이 없어 매 식사 시간이 고통스러운 상황이었고 뭔가를 꾸역꾸역 먹으면 어김없이 탈이 났다. 개인적인 일들은 자질구레하지만 확실하게 터졌고, 덕분에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오후에는 집에 물난리가 났더랬지. 하려던 업무를 다 접고 집에 가서 물을 퍼내야 했다.
바로 그날 교통사고까지 난 것이다. 말이 되냐고, 이게!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한꺼번에 닥쳐오는 거냐고! 신촌을 오가는 수많은 이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생을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나는 이륙 좀 해보려고 하면 자꾸만 무슨 일이 생겨 비상창륙을 해야 하는 거냐고. 첫 원망은 하늘을 향하고, 두 번째 원망은 나를 탓한다.
내가 요즘 뭔가를 잘못하고 있었나?
내가 전생에 뭔가 잘못했나?
혹시, 하느님 지금 저 혼내시는 중?
저 뭔가 잘못했나요오오오오오?
이런 심정, 못나보여 말도 못 꺼내고 속으로 삭히고 있는데 손말티비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야수가 내게 그런 말을 해줬다. 공대 나온 사람이니까 머리로 생각을 해보라고. 그 사건들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독립적인 사건들이라고. 그 일들이 한 번에 닥쳐왔다고 해서 나에게 책임이 있는 건 아니라고. 내가 손 뻗으래야 닿지 않았을 일들이라고. 욕할 줄 아는 사람이면 '씨발' 하고 잠이나 자버릴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애인도 말해주었다. 버릴 건 버리자고. 택시기사님이 사과도 안 할 건 분명하다고. 길을 걷다 장애물을 만나면 그 장애물은 피해 가면 되는 거라고. 그냥 그뿐이라고.
하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이지 그런 날들이 다가오는 순서에 의미가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교통사고가 난 것도, 물난리가 난 것도, 식욕을 잃은 것도 모두 내 탓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마음속에는 자꾸만 시커먼 의심이 피어난다. 나에게만 어째서 이런 일이? 왜 나는 이렇게 못난 생각들을 하는 걸까? 사실은 내가 이렇게까지 못난 사람인 거야?
내 통증에는 이름이 없다. X-ray 수십 방은 찍은 것 같은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뼈, 관절 모두 괜찮단다. 현대의학에서 진단은 "근육과 신경이 많이 놀랐습니다. 진정시킬 때까지 안정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 병명도 없는 것이다. 환자 코드도 마찬가지. 그냥 [교통사고 환자]가 내 침대에 붙은 명찰이다. 이름 없는 이 고통은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슬프다. 이름이 없어도 알아는 주라! 억울하다고 엉엉엉. 오늘도 결국 징징거리게 된다. 왜 나는 나의 아픔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것일까? 왜 나는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못나서 그런 것인가? 약해서 그런 것인가?
이거 봐.
나 아파.
나 호~ 해줘.
........-_-;
다행스럽게도 병문안을 와준 은일님이 '아프면 누구나 그렇다'라고 말해주어 한시름 내려놓았다. 휴, 나만 그런 건 아니군.
아프니까 외롭더라. 외로우니 나약해지더라. 나약해지니 날카로워지기까지 하더라. 난 살아있는 칼날이 되었다. 무언가를 베어내고 싶다고 생각해보지도 않은, 목적도 방향도 없는 미친 칼. 만약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까지 가니 진짜 내가 위험하게 느껴진다.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눈치도 개념도 정신도 없는 칼날은 내 곁의 사람조차 싹둑싹둑 다 썰어버릴 것 만 같아 무섭다.
난 왜 이 아픔을 공감받고 싶어 했던 걸까. 애인이 생긴 뒤 내 중심은 더욱 비틀거린다. 어떤 하루는 이렇게 말한다. "넌 그대로 있어도 돼. 난 그걸로 충분해." 다른 어떤 날엔 이런 걸 바란다. '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너이기를.' 이렇게 저렇게 왔다 갔다 반복하며 새로운 영점을 찾아가는 거겠지? 그 시간 동안 나를 지켜볼 넌 어떤 기분일까? 이 상황의 영문도 모를 애인에게 오늘따라 내 존재가 미안하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내가 마냥 밝고 건강하고 청량하지 못해서 니 뒤에 숨고 싶은 날.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아팠다고 말하려고. 그리고 그걸 알아달라고. 사실 지금도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일이 오면 아플까 봐 무서워.
나 아팠어.
아까 너무너무 아파서
너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어.
그런데 나 진짜 너무 아팠어.
엉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