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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Sep 10. 2019

사귀는 게 뭐라고 생각해?

나의 모든 날들을 다 주고 싶어

평생을 불안에 시달렸다, 나만 불행할까 봐.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일까 봐. 결국 또다시 상처 받겠지, 일어나지 못하겠지. 난 결국 그렇고 그런 사람이니까.


어떤 좋은 일도 누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나다. 행복의 꼭대기에서도 불행의 구렁텅이를 걱정하는 사람이 나다. 걱정만 할 뿐, 불행을 준비하지도 않는 사람이 나다. 할 줄 아는 것은 그저 걱정, 걱정, 걱정.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던 내 생각의 구조가 너를 만나고 조금 달라졌다. 너라는 사람에게 나라는 숙제를 받은 지 어느덧 세 달. 매일 너에게 고백하던 내가 이제는 매일 너에게 고백을 받는다.


우리는 만난 지 18일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 마음을 숨기지 않는 사람, 누구보다도 예쁘게 웃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다. 바라보다 닳을까, 만지다 깨질까, 놀래키면 달아날까 여전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너를 만난다.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내 스타일일 수 있는 건가? '이런 게 정상인가요?' 같은 질문을 정말 싫어하지만 요즘 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이런 질문이 메아리친다.


얘가 너무 좋은데 이거 정상인가요?!!!!!!



처음엔 너를 좋아하는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비친 내 모습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거든. 그런 내가 좋아하는 게 하필이면 너였다. [성실]의 [ㅅ]도 모르는 내가 성실의 대명사인 너를, 너무 게을러서 주변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는 내가 봉사와 헌신의 대명사인 너를, 칼날처럼 날카롭고 예민한 내가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처럼 투명한 너를 좋아한단다.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될 줄.


괜찮아. 처음에는 누구나 다 어려워. 할 수 있는 만큼씩 꾸준히 하면 나아지게 되어있어. 힘들 땐 옆에 있어줄게. 걱정하지 마. 실패해도 괜찮아.


이런 마법 같은 말들을 매일 들으며 살고 있다. 네가 해주는 작은 말들을 모아서 기록하는 것이 나의 소중한 취미가 되었다. 너무 소중해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순간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을 받아 적어 성경으로 엮듯, 난 너의 생각들을 모두 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예쁠까?


그래서 나는 이제 불행해지기를 포기하려고 한다. 우울한 상태로 지내기 위해 꽤 긴 시간을 애썼다. 우울한 상태로 지내는 한, 잃을 것은 없었다. 어차피 늘 우울하니까 괜찮았다. 성공해도 우울했고, 실패해도 우울했다. 바쁘고 정신없을 때에도, 일 하지 않는 한적한 때에도 늘 우울하기 때문에 괜찮을 수 있었다.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도, 나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도 믿지 않으니 편리했다.


사람은 다 떠나. 이래도 떠날 것이고, 저래도 떠날 것이야. 사람은 결국 다 변해. 네가 뭐라고 내 마음에 상처라는 흔적을 남겨? 허락할 수 없어.


걱정과 우울로 점철됐던 과거의 순환고리는 이제 끊어지고 있다. 널 좋아하는 나를 믿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는다. 사막을 떠돌던 새처럼 세상을 부유하던 내가 마침내 이 땅에 발을 딛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기분이 좋아 -


예전엔 나만 너에게 고백했지만, 요즘의 넌 내 말을 되받아친다. "나도 좋아해, 보라-" 넌 가끔 나에게 귀엽다고 말한다. 어떤 날엔 하루에 세 번이나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날에는 나를 바라보던 네가 갑자기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그 예쁜 얼굴로.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말은 해내고 마는 네가 너무 부럽다. 난 너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날에도 한숨 쉬는 척 흘려보낸 고백이었다. 너는 나를 보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 너에게 내가 물었다.


네가 사랑의 [ㅅ]이나 알아? 사랑이 뭔 줄 알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너는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며 답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이런 말은 많이 하면 좋은 거 아니야?" 후.. 네 말이 맞다. 난 또 계산이라는 걸 했어. 그동안 인생에서 참 쓸모없는 것들을 많이도 배웠다. 예를 들면 자존심 같은 것. 결국 오늘도 니 곧은 마음에서 또 위안을 얻는다. 너라는 존재가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다. 내가 달리는 곳도, 달려서 향하는 곳도, 달려가다 잠시 쉬는 곳도 모두 너야.


너와 매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아직도 믿기 힘들다. 너의 하루치 생각과 감정을 공유받는 사람이 나라서 놀랍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라서 매 순간 다행이야. 너 때문에 매일 심장이 너덜너덜하고 하루하루가 새로워. 네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이런 마음을 매일 고백할 수 있어서 행복해. 네 존재가 나에게 선물이듯 언젠가 나도 너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난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너도 나 때문에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반하는 건 지겨울 줄 알았는데 막상 당해보니 하나도 안 지겹다. 하아...


나는 보라한테 어떤 사람이야?



질문이 없던 네가 오늘은 내게 묻는다. 네가 살아있는 곳이라서 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졌어. 내 생이 싫었고 미래가 버거웠는데 너랑 함께라고 생각하니까 조금씩 눈을 뜨게 돼. 앞을 보게 돼. 내 앞에 일어날 일들을 보고 싶어 져. 이제 나는 불행한 인생을 포기하려고 해. 너라는 행복에 이제는 그만 항복하려고 해.


연애하기로 한 우리 둘의 관계는
예전과 뭐가 달라졌을까?
달라지는 게 맞을까?
어떤 점이 달라져야 할까?
달라져도 될까?


난 여전히 널 좋아해. 여전히 너를 보고 싶어. 여전히 너에게 연락하기 전에 망설여. 여전히 네 마음에 욕심을 내. 내 소원은 여전해. 네가 어제보다 오늘, 나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되는 것. 잘 자고 우리는 내일 또 만나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한용운, 복종 中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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