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눈물이 나는 걸까

영화 82년생 김지영 리뷰

by 보라체
너무 많이 울어서 영화가 끝나고 나니 머리가 아팠다. 난 왜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나 울어야 했나. 영화 상영이 끝나고 토크에서 만난 여성들은 이 영화 때문에 많이들 울었더라. 다들 어떤 지점에서 울었을까? 어떤 공포, 어떤 차별의 경험을 되새겼을까. 영화 얘기를 빙자해 내 얘기를 또 꺼내본다.


(주의) 스포 가득 있습니다. 영화 보신 분만 보세요.


처음으로 오열했던 포인트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버스까지 자신을 쫒아온 남학생이 무서웠던 김지영은 얼굴도 모르는 중년 여성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핸드폰 문자 입력 기능으로 도움을 요청한 이야기였다. 얼굴도 모르는 관계의 여성이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니냐'며 다른 여성의 상태를 살피는 것,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장면이었다. 간단한 수신호만 보고도 휴대폰을 내어주는 중년 여성의 눈썰미가 너무 마음 아팠다. 다들 눈치로 아는 것이 아니다.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지금 이 사람에겐 내가 필요할 수도 있겠구나.'


김지영이 버스에서 내렸을 때 김지영과 함께 나도 두려움을 안고 버스에서 내렸다. 안전하게 문이 닫히는 줄 알았던 버스에서 문이 다시 열리고 남학생이 따라 내렸을 때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한낱 스크린 속에 갇힌 영화 속 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떠나가는 버스의 뒷모습이 나올 때, 그 버스 뒷모습을 얼마나 째려봤는지 모른다. '김지영이 도움을 요청했던 그 중년 여성이 따라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그래야 할 텐데. 정말 저 버스에서 아무도 내리지 않는 걸까. 그러면 김지영은 어떻게 되는 거지.' 버스 뒷모습을 보는 2-3초 만에 이런 생각을 했다. 결국 버스가 멈추고, 중년 여성이 내릴 때. 그 여성이 자신의 목에 있던 스카프를 풀어서 "학생- 이거 놓고 갔어!"라고 소리 지를 때 정말이지 엉엉 울어버렸다. 지금도 이 장면을 복기하면서 또 눈물이 나.


중년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남학생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고, 다리에 힘이 풀린 김지영이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그런 김지영을 중년 여성이 또다시 안아줄 때 나는 김지영이기도 하고, 그 중년 여성이기도 한 채로 엉엉엉 울어야 했다.


나에게도 이런 공포가 있다.

아무리 훤한 대낮이라도 누군가 내 뒤를 쫓아온다는 느낌이 들 면 너무 무서웠다. 집에 올라가는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리면 숨을 멈추고 소리가 지나갈 때까지 멈춰있었다. 과거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생생한 기억은 엄마에게 들은 말뿐이다. 누가 쫒아오면 슈퍼나 문방구로 들어가라는 말, 집에 들어오기 전에 집 계단에 누가 숨어있지 않은지 잘 확인하라고 했던 말, 밤늦게 다니면 위험하다는 말, 모르는 어른이 말을 시키면 답하지 말라는 말.


난 아무것도 피할 수 없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무엇인가를 피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달리기라도 빠르면 좋았겠지만 내 달리기 실력은 반에서 꼴찌였다. 도망갈 수 없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눈에 흙이라도 뿌릴 수 있을까 같은 쓸모없는 생각을 늘 하고 다녔다. 이런 공포는 일회성이 아니었다. 초중고 12년, 직장생활을 하는 몇 년 동안, 독일에서 살던 반년 동안에도 나를 쫒아다니던 그 공포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대비하기 위해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쓰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그 공포다. 이런 공포를 갖고 30년 넘게 살았지만 여전히 무력한 나는 김지영이 나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내가 '도움'을 필요로 했던 김지영이라면, 요즘의 나는 '도움'을 줘야 하는 순간이 잦다. 예전엔 '도움'이라고 표현했지만 요즘은 이렇게 표현하지 않고, 닥친 상황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비교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장애인에게 배려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듯, 문제 상황에 처한 여성이 필요한 것도 도움이나 배려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쨌든 내가 이런 입장이 된 것은 나 이외의 사람들을 조금씩 살필 수 있는 시야가 생기면서부터였다. 다른 여성들도 나와 비슷한 공포를 갖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부터, 혹은 그 공포의 이유가 단순히 뜬소문에서 비롯된 허황된 문제가 아니라 진짜로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벌어졌던 사건에서 비롯된 공포였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일 것이다. 그때부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과 내 옆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경우를 모두 걱정하게 됐다. 답은 여전히 없다. 자신도 없다.


당장 어제만 해도

지하철에서 다리가 불편한 아저씨가 내 또래 여성을 은근히 껴안고 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아저씨는 거동이 불편했고, 기둥을 붙잡지 않으면 퇴근시간대를 달리는 만원 지하철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할 수 없었다. 그 기둥 앞에 여성이 서 있었기 때문에 아저씨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저 여성이라면 난 너무 불편할 텐데, 왜 저 사람은 가만히 있지? 괜찮은 건가, 도움이 필요한 건가 알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아저씨에게 길을 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덕분에 그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여성은 계속 가만히 서 있고, 아저씨의 팔은 그 여성에게 에둘러진 상태였다. 아저씨 앞에 길이 트이면서 상황은 끝난 듯했다.


하지만 이어 벌어진 두 번째 상황. 그 장면을 잠깐 본 다른 아저씨가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거, 아저씨 내리면서 은근히 아가씨를 안고 가네? 하하하 웃기는 아저씨야."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이 아저씨는 뭐라고 말을 뱉어버린다. 이 아저씨의 의도는 어떤 걸까. 이 상황이 정말 웃긴 걸까? 아가씨가 걱정되지만 말을 붙이기가 어려워서 혼잣말하듯 일행에게 큰 소리로 말한 걸까? 그 '아가씨'도 나도, 그 칸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여성은 자리를 떠났다. 난 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괜찮아요?"라고 물어보지도 못했고, 그 아저씨한테 "그렇게 웃으시면 불쾌해요."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까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청소년 김지영이 겪은 이런 귀갓길 공포는 사소한 것,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김지영 아버지의 말처럼.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 되지, 멀리 다니면 안 되지, 네가 웃어줬으니까 쟤가 따라왔겠지, 평소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냐?" 같은 말들이 나에게도 매일 쏟아졌다. 그럼 나는 멀리도 가면 안되고, 웃어도 안 돼? 학교가 밤 11시에 끝나는 나에게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라니? 내가 해도 괜찮은 일은 뭐야? 그런 걸 누가 정해? 누가 허락할 건데? 분명히 김지영이 걱정되어서 버스정류장으로 나왔을 아버지가 김지영을 탓할 때 내 얼굴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던 이유일 것이다. 소매로 닦을 수 있는 눈물이 아니라 진짜 목욕탕에 물 흘러넘치듯이 울어버렸다. 난 왜 이 대목에서 그렇게 울었을까.. 아무리 밤늦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라고 해도 이 지점이 이렇게 억울할 일이야? 나한테 물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오열했던 부분은 마음이 아픈 김지영을 보기 위해 김지영의 어머니가 왔을 때였다. 영화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울어서 내가 앉은 의자가 흔들거렸다. 김지영은 멍하니 어두운 집에 혼자 앉아있고, 그런 김지영이 있는 집에 남편과 어머니가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와 침묵 속에서 김지영을 빤히 보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지영아!"라고 엄마가 부를 때, 김지영이 "엄마, 나 엄마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말할 때 너무 많이 눈물이 났다. 어머니가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돌아설 때에도, 그런 엄마의 뒷모습에 대고 김지영이 엄마의 엄마가 되어하는 말들도 너무 아팠다. "내 딸에게 뭐가 씐 건지, 내 딸이 왜 이런 건가 장서방!"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딸에게 집중해서 "장서방, 내 딸이 왜 이렇게 된 건가, "라고 말하며 울 때...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장면은 나에게 시처럼 다가왔다. 결국 김지영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또 어머니가 되겠구나. 이 여성에게 진심으로 공감을 표현하는 사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사람은 또 여성이겠구나. 김지영이 왜 이렇게 됐는지, 누가 알까?


공유는 착하지 않았냐고?

공유는 부인을 정말로 사랑하지 않았냐고? 공유 정도면 좋은 남편 아니었냐고? 집에 와서 가사노동 전혀 안 하던데? 하루 종일 가사 노동하는 김지영을 보고만 있던데? 아기 목욕을 전담하는 것처럼 나오는 모습은 더 속상했다. 겨우 아기 목욕시키는 거 전담한다는 이유로 생색내는 남편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가! 직장에서 수십 번은 들었던 말이다. "요즘 그런 집이 어딨어~ 나는 우리 애들 목욕은 내가 다 시켜." 육아의 극 일부만 담당한 것을 인지조차 못하는 상태, 마치 자신이 육아를 반반 나눠서 하고 있다는 듯한 생색내기에 질렸던 순간이다.



나는 원래 이 영화를 남자인 내 애인과 함께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더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인 공유를 주의 깊게 보게 됐다. 남편은 왜 그 모양이었던 걸까? 김지영을 정말 사랑하지만, 그냥,, 커피를 좋아하고 빵을 좋아하듯 그렇게 좋아하는 느낌. 김지영을 좋아하는 마음은 찐 사랑일지 모르지만 정작 본인은 뭘 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뱅뱅 도는 사람. 남편인 공유를 포함해서 영화에 나온 나쁜 시어머니도, 남동생도, 다들 사회구조 속에서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결국 저런 남편들이 결혼한 덕분에 세상이 아직도 이런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게 되더라. 이런 나를 보고 내 친한 친구는 나에게 자꾸만 남자 탓을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을래. 이럴 때 남자 탓도 좀 해보고 그런 거지. (응?)


"내 아를 낳아도! 내가 많이 도울게!"라고 말할 때는 얼마나 기가 차던지. 김지영은 말했다. 아기를 낳으면 내 인생은 정말 많이 변할 것 같은데 너는 어떻냐고. 몇 초 생각해보더니 남편이 답한다. "술 안 마시고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하겠지." 남편에게 일어나는 변화라는 게 겨우 이런 것이다. 술 안 마시고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하는 것. 이건 남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김지영을 포함해 둘에게 똑같이 주어진 상황일 텐데 저렇게 말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애교로 넘어가면 화가 치밀어 오르겠어요? 안 오르겠어요?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 애교를 부리는 사람이 공유였고, 그 애교라는 것이 셔츠의 단추를 푸는 것이었던지라..... 이런 상황이 내게 주어진다면 판단력 따위는 상실하고 싶다.)


김지영이 일을 하고 싶어 할 때 이 남자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었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더니 "누가 너한테 그런 거 하라고 했어?"라는 말을 하더라. 김지영은 남편이 하라고 말한 일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말을 하더라. tmi지만 우리 집에서도 매일 울려 퍼지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렇다. "누가 너한테 돈 벌어오라고 했어?" 하지만 취미생활이라도 하려고 하면 "돈도 안 벌면서 그렇게 쓰기만 하면 어떻게 해?!"


일을 하기 위해 헤쳐나가야 하는 일들을 모두 김지영 혼자 했다. 구체적으로는 유치원 종일반과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 중 어떤 방법이 나은지 찾아보는 일,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위해 전단지를 붙이는 일, 육아 지원제도를 알아보는 것도 김지영 혼자 한다. 공유가 한 일은 그저 맥주 마시면서 그런 김지영의 얘기를 보고받는 것. 아이는 같이 낳았는데 왜 김지영 혼자 이 모든 걸 알아봐야 하는 거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일하고 싶어 하는 김지영을 위해 육아휴직을 하려고 했던 점을 칭찬해야 할까? 육아휴직 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냥 쓰면 되는 것이지, 어머니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육아휴직 얘기는 쏙 집어넣은 사람이다.


시댁과 며느리와의 관계에 끼인 남편이라는 위치에서 공유는 어땠나? 둘 사이에 아무 개입도 하지 못했다. 마치 개입한 것 같지만 번번이 개입에 실패했다. 집에서는 가사노동 1도 하지 않고, 시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갑자기 설거지를 하는 척해서 며느리를 욕 먹이는 사람이 남편이었다. 부인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자신은 한 발 뒤로 빠지고, 여동생에게 부탁하는 사람이 남편이었다. "엄마가 지영이한테 아무 말 말 못 하게 좀 해줘." 이런 부탁도 자신이 못하는 것이다.



59년생 심상정

나는 이 영화를 59년생 심상정 의원과 함께 봤다. 영화가 끝나고 심상정 의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께서는 어머님께 지지와 응원을 받지 못하셨다고. 왜 유별나게 구느냐는 이야기를 늘 들어야 했다고. 김지영의 어머니는 전폭적으로 김지영의 편에 서 있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위로가 됐다고 했다. 오늘은 저 영화 속 어머니 곁에서 잠들고 싶다고. 그런 어머니가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 좋겠다고.


그래서 심상정 의원은 부모님 때문에 운 시간보다,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 더 많이 울었다고 했다. 미안하고, 답이 없었다고.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로 "나 혼자서만 전쟁이야"라는 대사를 꼽으셨다. 이후에 결국 심상정 의원이 일을 하고, 남편이 가사를 전담하는 상황으로 변화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남편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여기서는 여성이 이런 차별과 혐오를 겪어내고 있지만, 남성이라고 해도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입장에서 많은 차별과 혐오를 겪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부장 중심의 사회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우리 가정의 누군가는 이 구조에서 상처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역시 성평등은 남자-여자의 의제가 아니라 그냥 인류의 의제인 것이다. 인류의 의제를 너무나도 담백하고 찐하게 그려낸 이 영화, 배경음악도 별로 없이 리듬감 가득 담겨 편집된 이 영화가 나는 너무 좋았다. 여러분 두 번, 세 번, N번 보세요.


영화를 보고 나서는 카페의 엄마들이 더 잘 눈에 들어온다. 진짜 발로 유모차 이렇게 밀면서 뭔가 다른 일을 하는 여성들이 많더라.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계가 이렇게 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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