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며

빨간 머리 앤

by 보라체

너무 진솔하고 소중한 이야기들이라 보는 내내 마음이 뜨겁다. 앤이 삶을 대하는 치열한 자세에 숙연해지길 여러 번, 이번화 앤 마을의 이슈는 죽음이다. 갓난아이를 낳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웃주민, 메리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앤은 죽음을 앞둔 메리를 위해 부활절 행사를 준비했다. 몸이 아픈 메리가 부활절 행사에 머무를 수 있도록 행사장 환경을 세심하게 준비했다. 메리가 보고 싶어 할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메리의 레시피를 예쁜 수첩에 자세한 기록으로 남겼다. 세상에 남겨 두고 갈 갓난아이에게 엄마의 맛을 유산으로 물려주려는 앤의 마음이다. 엄마가 살아있는 동안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도록 정성 들여 준비했다. 갓난아이 시절에 고아가 된 앤의 처지가 녹아있는 아이디어였기에 그 무게가 엄청났다. 이런 고민을 보고 있자니 나조차도 메리의 죽음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 진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뭔가 없을까?



결국 메리는 떠나고, 앤은 신문에 부고를 썼다. 메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어떤 것을 사랑했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떤 일에 어떻게 마음을 쓰는 사람이었는지를 적었다.


요즘 우리네 부고는 어떠한가? 그저 누구누구의 아버지로, 어머니로, 시부모로, 소개되고 장례식장은 어디인지, 발인은 언제인지가 단톡에 뜬다. 물론 고인과의 이별에 해결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을 유족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준비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이별은 더욱 그럴 수밖에.


한번 인상적인 일이 었었다. 직장동료 할아버지의 부고였는데 나는 부조만 하고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장례가 끝나고 직장동료로부터 종이 편지를 받았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어떤 가치를 중시하며 어떻게 살다가 떠나셨는지, 자신에게 할아버지는 어떤 의미였는지가 상세히 적혀있었다.


이런 게 진짜 격식이구나 싶었다. 할아버지를 사랑했던 마음을 표현하려면 이 정도 격식은 과하지도 않구나. 그 사람의 인생과 죽음을 기억하는 일. 가족들로부터 존중받는 죽음이었다.


누군가 내 부고를 써준다면 어떨까?
누가 내 부고를 써줄까?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유난하고 예민했던 사람으로? 과격하고 급진적인 사람으로? 느리고 답답한 사람으로? 의견과 자기주장이 많아 귀찮은 사람으로? 이제라도 내가 사라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 혹은 내가 세상에 나고 생을 살아줘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줄 사람도 있... 겠지? 몰아치는 질문들이 모여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첫 번째는 역시 우리 애인을 세상에서 제일 많이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고

두 번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세 번째는 부족함을 인정하며 평생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고

네 번째로 집안일에는 게을러도 마음 표현에는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모쪼록 사랑꾼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이 글을 여기에 적으며 어쩐 일인지 이런 바람을 갖게 되었다. 죽을 때 즈음엔 세상을 향한 내 사랑이 오해받지 않기를. 내 방법도 틀리지 않은 길이었다고 누군가에게는 인정받을 수 있기를.




이 글은 무연고자의 장례를 지원과 죽음준비교육활동을 진행하는

(사)나눔과나눔 블로그에도 공유되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hopenana/2219700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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