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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Oct 28. 2019

상담을 받아봐야 할 것 같아

내가 사회 부적응자라고?

상담을 받아봐야 할 것 같다. 생리 전에 화, 우울감이 심하게 올라오는 편이다. 이번 달엔 이 느낌들이 너무 고스란히 느껴져서 힘들다. 어제는 집에 들어온 벌레 한 마리를 목격하고 심각한 우울에 빠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왜 내가 이런 벌레랑 같이 살아야 하지?'로 시작하는 생각은 정말 순식간에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버린다. 왜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 나에겐 이렇게 큰 울림을 주는 걸까.


이렇게 사는 게 어떤 거냐고?

괴리가 너무 많다. 돈 벌고 싶지만 일 하기 싫고. 집을 갖고 싶지만 실상은 책상 하나도 갖지 못했다. 괴리가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날, 어디론가 깊숙한 곳으로 숨고 싶지만 숨을 수 없는 날 나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걸까. 오늘 이 느낌은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것과도 큰 연관이 있다. 여느 때면 나도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있는 건가 싶다가, 결국 돌고 돌아 여기로 오는구나 싶어서 또다시 무력하다. 벗어날 수 없는 느낌. 나를 잡아두고 있는 낡고 힘없는 사슬이 더 차갑게 느껴지는 날.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삶에서도 행복을 느끼는데 왜 나는, 도대체 왜 나는?이라는 생각의 덫에 계속 빠진다. 두 달 전, 구덩이에 빠졌던 나에게 야수가 이런 말을 해줬다. 삶은 바람 같은 것이라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어디서 오는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나에게 왜 이 바람이 불어오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고. 곱씹을수록 격하게 동의하게 되는 말이다. 그걸 알고 받아들여도 이상하게도 매달 이렇게 되는 것이다. 행복해지려 하는 것이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다. 이 말에도 공감한다.  지금보다 더 행복하려고 하면 무언가를 해야 하고, 그 무언가를 하려면 나를 움직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와 오늘에 걸쳐 이런 불안을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이 괜찮다고 해서 나까지 괜찮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도 알아. 내가 괜찮은 일들이 남들에겐 안 괜찮기도 하니까. 남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난 안 괜찮을 수 있지. 아무리 머리로 생각하고 이해해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다.


일 하는 시간이 길다.

일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 결과물은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내 일의 과정과 결과물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머리에 띄우며 '아, 내가 누군가에게는 어떤 의미가 되어 가 닿고 싶은 가보다' 나를 발견한다. 내 실력이 답답하고, 내 속도에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일해서 내 인생이 더 나아질 수 있나? 내 실력이 더 나아질 수 있나? 내 성장 속도는 노답인데.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하고, 행복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어라? 이 생각 자체가 민폐인데?


이런 생각으로 일하는 시간에는 일만 할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놀 때는 노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결론은 잘 안 된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니 어떤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뒤죽박죽이다. 내가 한 노력들은 충분했나? 스스로를 보살필 수 없고, 방목한다.


안전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고, 솔직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난 어떻게 숨 쉬어야 할지도 모르는 물고기가 된 것 같다. 어제는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일 해서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이 현실인가?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일 안 하잖아. 말도 글도 쓸 수 없는 시간이 길었다. 덕분에 나는 고립되었다. 왜 나는 여기 고립되어 있지?



워킹푸어

아마 내 현실을 워킹 푸어라고 부르는 거겠지. 지금처럼 나는 미래에도 워킹푸어로 살아야겠지. 대출금을 겨우겨우 갚아가다가 숨이 다할 때 즈음에 겨우 다 갚는 삶. 겨우라도 다 갚으면 얼마나 다행일까. 희망이 삶에서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나? 내 인생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운 요즘이다. 내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 무거운 짐처럼 느껴져서 내가 쓰러질까 봐 두렵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에서 끊임없이 발을 내디뎌야 하는 형벌을 받는 것 같아. 정말로 병원을 가봐야 하는 걸까. 애인에게, 친구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 미안하다. 그들은 무슨 죄로 이런 나를 봐야 하는 걸까. 과거의 나, 또는 현재의 나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나는 불안하다.

어제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인식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애인과의 관계에 흠을 찾으려고 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위로해주고, 심지어 미안하다고 까지 말하는 애인을 보며 느꼈다. '나에게 불안이라는 감정이 찾아왔구나.'


이 감정이 생리 전 증후군이라고 해서 단순한 일은 아니다. 지나갈 감정이라고 해서 없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20년을 이렇게 살았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불안. 운 좋게 PMS를 인지한 적도 있지만, 인지하지 못한 채 칼춤 추며 보낸 날도 있었다. 영문 모르고 이불속에서 혼자 엉엉 우는 날도 있었고, 미리 예상하고 대비해서 슬픈 영화를 보고 견뎌내는 달도 있었다. 성공 타율은 1할도 안 돼. 여전히 이 불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맨다. 생리하기 전 호르몬 변화가 이렇게나 세상 심각할 일이야?라고 생각하지만 심각해. 아주 심각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어찌할 바를 몰라 또 헤맨다.


나를 세우는 일

지금까지 만난 많은 사회활동가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들었다. 이런 엉망진창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 살기란 얼마나 힘든 지. 스스로를 마취시키지 않고 상처를 받아내고 치료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 지. 모든 것이 뒤엉키고 삐뚤어진 세상에서 나 한 명 똑바로 세우기가 얼마나 외로운 지. 한편으로 우리는 의문을 갖기도 했었다.


똑바로 서야 하는가?
그럴 이유가 있는가?
맨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가?
맨 정신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이렇게 고달프게 살아가는 것은
내 유전자 때문인가 내 환경 때문인가?
나는 사회 부적응자인가?


영화 기생충에서 나왔던 명대사가 생각난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는 나의 티끌 같은 하루하루가 모여 무엇이 될까. 태산 같은 포만감을 갖는 날이 올까. 역시 사람은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해. 하지만 유독 비싼 병원비에 다시 침 삼키며 기다려본다. 일주일만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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