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 만들기

'평범'이라는 허상

우리에겐 모두 '문제'가 있다.

by 보라체

평범한 줄 알았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학교를 다니고 평범한 직장에 다녔다. 그것은 맞았고 틀렸다.


1*ZkFlSPEmD2l_1fYVPr7pUQ.jpeg 사람은 오지게 많고 나는 그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인걸? 그러니까 나는 ‘평범’해.


우리 집에는 장애인이 없다. 친척 중에는 장애인 신분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그가 장애인이 아니라고 배웠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 밀폐된 곳에 둘만 있을 때 나를 만지는 친척이 있었지만 그건 친분의 표시지 성폭력이 아니라고 성교육시간에 배웠다.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칼을 들고 엄마를 협박하는 아빠를 봤다. 맞벌이하는 부모님과 함께 나를 키워주신 증조할머니는 아빠가 직장생활을 하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니 이해해야 한다고, 하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이 일을 말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는 평범한 학교를 평범하게 다녔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친구가 결석했고 선생님은 걔가 아프다고 했다. 걔네 집에 가보니 집은 쑥대밭이고 내 친구는 가출했다던데. 나중에 걔는 임신했고, 도둑질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중학교에서는 일진이라는 애가 내 친구를 때리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내 친구는 운동장 구석, 조용한 복도에서 맞았다. 한 번은 사람으로 가득 찬 교실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여러 대를 맞았다. 맞고 와서도 내 친구는 웃었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지 걔가 나쁜 게 아니라고 했다. 선생님에게 말했냐는 내 한심한 질문에도 웃으면서 대답해줬다. 선생이라고 다르겠냐고. 그 말마따나 며칠 후엔 선생님에게 뺨을 맞는 친구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직장에 다녔지만 내 월급은 150만 원이었으며 그나마도 한 달씩 밀리기 일쑤였다. 4년제 대학 나오면 잘 살 수 있다고 들었는데 150만 원으론 잘 살 수 없었다. 일하면서 자주 다쳤지만 한 번도 회사에서 보상이나 배상을 받은 적 없었다. 유명한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학력세탁 아니냐는 말이 인생에 꼬리표처럼 붙었다. 좋은 직장에 가게 됐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식사비도, 야근수당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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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평범한 걸까?

스스로의 삶이 평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의 문제-나는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숨기려면 숨길 수 있는 이 정도의 문제-는 평범하다고 얘기하는 걸까?


당시에는 내가 겪는 일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파악도 못한 시간이 가장 길었고 뭔가 잘못되고 있음은 알았음에도 딱히 인정하지 않은 시간도 있었다. 지금에서야 이 일들에 이름을 붙인다. 장애인 차별,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임금체불, 산업재해, 학력차별,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이름.


생각해보니 끝이 없다. 나만 겪은 문제가 아니라 다들 겪는 문제다. 이런 문제를 겪으면서 살아가려면 인정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답이다. 내가 제 아무리 서울대를 나왔다고 한들 미국 동부니 서부니 하면서 서로 기립박수 쳐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들어갔어도 부모가 건물주인 사람보다 적게 일할 수 있을까?


1*i8qafJIoxH3MYFB4xKqS1A.jpeg “너는 열심히 공부에서 여기를 벗어나. 너도 부자(자본가)가 될 수 있어.”


이런 말 덕분에 난 이렇게나 열심히 살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 채 사람들이 좋다는 길로 걸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면 우리 부모님의 ‘평범한’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내 다짐은 부모님이 가진 문제보다 더 적은 문제를 마주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내 가족 중에는 장애나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
내 자식들은 장애인이나 성소수자가 아닐 거라는 믿음.
내 부모와 친구들은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믿음.
내가 속해있는 조직과 공동체는 깨끗하고 합리적이라는 믿음.


이런 믿음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오늘 갑자기 떠나보낼 리 없다고 믿는 것처럼 허황된 믿음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해낼 수 없다.


좋은 날씨에 흥얼거리며 길을 걸어도 지나가는 아저씨가 내 엉덩이 때리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도 낙하산 매고 떨어지는 무능한 상사를 피할 수 없다. 갑자기 나를 찾아오는 대상포진도, 통화하느라 가만히 서 있는 나를 차로 밀어버리는 운전자도 피할 수 없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 내가 지금 타는 버스가 목적지까지 아무 일 없이 도착할 수 있을지, 내가 묵는 숙소에 불이 나는 것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 사고가 나는 것도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 안심하는 순간 어느새 뒷머리채를 잡혀 다시 여기로 온다.


넌 아닐 줄 알았어?
넌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어?


내가 여기를 빠져나갈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여기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는 이유는 누구나 여기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평범한 삶’이란 게 허황이다. 평범하다거나 보통이라는 단어 자체가 글러먹었다.


문제가 없을수록 더 나은 삶일까?

시험이나 취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면 문제의 개수를 줄여 나갈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올시다. 기존의 문제와는 다른 문제를 마주하는 시간을 ‘해결’이라고 오해하는 걸 경계하고 싶다. 이제는 그만 올라가련다. 옆을 봐도 되고 아래를 봐도 된다. 지금의 나에게 당장 붙어있는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하련다. 그래도 행복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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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는 실재하지만 이제 나와는 상관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피라미드는 허상이다. 공부를 더 하거나 돈을 더 번다고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너무 이상적인 거 아냐? 삶은 원래 돌려막기야.
시간과 노동력, 자본을 포함해서 모든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걸 우선순위에 따라 돌려 막는 게 삶이야.
니 우선순위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마.”


사실 나도 잘 모른다. 피라미드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삶을 개선하려면 역시 삶을 봐야겠지. 막연하다. 당장은 내 존재를 이 땅에 발 붙이는 작업부터 시작하련다. 그걸 그라운딩이라고 하더라. 가장 확실한 사실부터 시작해서 사실의 영역을 넓혀가는 작업이 나한테 필요하다.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인지시키는 작업. Grou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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