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Mar 08. 2020

(7) 그때 그 아이가 누구인지 몰라서 죄송했다

"안 기자님, 그때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어요. 가끔 사진도 보내주고요."


변호사님 말씀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누구였더라. 아. 기억났다.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이라는 듯 세차게. 거짓말도 덧붙였다.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었는데, 안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그 아이'는 약 5개월 전 썼던 기사에 등장한다. 프랑스인 엄마가 "한국인 아빠한테 딸을 뺏겼다"고 한 사건이었다. 재판부까지 나서서 "아이를 돌려주라"고 한 끝에 아이는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5년 3개월 만이었다. 이 사건 전반을 이끈 변호사님 덕분에 취재가 가능했다. 


변호사님 생각은 "기사 쓴 너도 그 아이 걱정하고 있었지?" 였다. 그러지 않았다. 희미했다. 일부러 붙잡지 않으면 날아갈 것 같은 그런 걱정. 잠들기 전에서야 겨우 '잘 지내겠지?' 싶은. 그것도 1분 남짓. 그러다 일어나면 전부 잊어버리게 되는 사소한 꿈. 딱 그 정도였다.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매일같이 기사를 쓴다. 일주일에 약 10건 정도. 한 달이면 40건이다. 이 사건은 5개월 전이었으니 200건의 사건이 더 쌓인 셈이다. 이 중에서 '그 다음'을 취재한 건 한 손에 꼽는다. 그것도 그럴만한 뉴스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그렇게 한다. '그때 그 아이'들 9할이 지금도 기억에서 잊히고 있다. 


알리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다.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알리고, "문제는 이거다"고 알리고, "해결책은 이거다"라고 알린다(또는 알리고 싶다). 그런데 오히려 "알렸으니 내 역할은 끝!"일 때도 많은 것 같다(또는 전부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간단하다. 실제 그 아이를 보지도 않았고, 소송에 참여한 기간도 짧으며, 간접적인 취재 외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간단해도 될 문제일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방법은 글쎄. 일단, 뒤늦게라도 '그때 그 아이'가 프랑스에서 오래오래 잘 지내기를 기도한다. 무책임한 위선(僞善)이라는 지적에 할 말이 없다.


'그때 그 아이'가 나온 기사 : https://news.lawtalk.co.kr/issues/1313



이전 06화 (6) "둘러보고 오라"는 말에 둘러만 보고 왔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