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린 단상

누구에게나 지지 않는 해는 있다

by 유연

나에게 해는 하늘에 떠 있는 물리적 존재로 인식되지 않는다.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지만 멀게만 느껴진다. 나와 특정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인식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겨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될 것 같다. 익숙함에 속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매일 뜨지만, 또 매일 지며 변덕을 부리는 해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지지 않는 해가 좋다. 마음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물리적인 해만큼이나 품을만한 가치가 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을 살아갈 힘을 준다. 나와 어떤 관련성도 없었지만 특별한 계기로 소중한 존재가 된 것들을 편애한다.


누구에게나 지지 않는 해는 있다. 형태가 다를 뿐이다. 마음속에 꽂힌 문장들, 사랑하는 사람들, 추억이 된 즐거운 기억들, 또는 살아가는 현재 그 자체. 이 중에서 한 가지만 되리라는 법은 없다. 모든 게 해당될 수 도있고 이 밖에도 개인마다 특별히 편애하는 존재들이 있다.


나의 경우 일단 책이 그렇다.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하다. 모든 책은 가볍게 쓰이지 않았다. 작가, 디자이너와 출판업자, 편집자의 고민이 섞여 무거운 결정으로 쓰였다. 책을 읽을 때면 무거움 속의 정성과 배려를 문장을 통해 발견한다.


발견한 좋은 문장을 특별히 기록하지는 않는다. 귀찮은 탓도 크고 책을 읽을 때 준비물이 필요한 것 같아서 싫다. 언제든, 어디서든 꺼내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행간을 산책하듯이 읽는 게 좋다. 기록하지 않는 대신 좋은 책이 있다면 여러 번 읽으며 마음에 새긴다. 이기주 씨의 ‘한 때 소중했던 것들’을 늘 가방에 넣고 다닌다. 기억의 자연스러운 풍화와 사무침을 즐긴다. 당장 기억나지 않아도 좋은 문장은 필요한 상황에서 꼭 떠오른다. 내가 낙담할 때 힘을 준다. 문장에 감동받았다면 분명 그럴 수 있다.


책을 읽다가 감동받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어렴풋이 흐릿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누군가 분명히 문장으로 형상화한 것을 발견할 때다. 정말 그렇다고 공감하고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안심한다. 문유석 씨나 이기주 씨, 김동영 씨의 글이 대부분 그렇다. 작가님들과 한 번도 직접 만나 뵙지 못했지만 심리적 거리감은 몹시 좁다고 여겨진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이해할 때면 내 세계가 확장된다. 책을 읽으며 나의 편협하고 부끄러운 내면이 확장되기를 바란다. 페미니즘과 합리적 개인주의, 조명이 필요한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글을 통해서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 가치 있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목소리가 모두 존중받기를 꿈꾼다.


좁은 폭이긴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의 지지 않는 해다. 부모님과 가장 소중한 친구 2명이 내가 편애하는 사람들의 전부다. 주로 혼자 있을 때가 많다.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한다. 나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가 좋다. 이유 없이 그래도 된다는 게 매력적이다.


넓은 관계를 맺는 게 참 힘들다. 공적인 영역의 사회성을 뜻하는 게 아니다. 초청하지 않은 누군가 나의 사적 영역에 들어오는 게 버겁다. 대부분의 관계에서 낯을 가리고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다. 편애하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대화는 즐기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부담스럽다. 적당한 거리가 서로에게 유익하다고 믿는다.


내가 편애하는 사람들은 조건이나 이유,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어떤 생각을 하든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어떤 결정을 하든 응원한다.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가깝게 느껴진다. 자주 보진 못해도 이들을 생각하면 든든하다.


나의 지지 않는 해는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서로가 더없이 소중하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갑을관계가 아닌 자유로운 관계다. 관계의 자유로움 속에서 우리만의 규칙을 존중하며 최선을 다한다. 많지는 않아도 감사할 따름이다.


누구에게나 지지 않는 해는 있다. 생각하면 설레고 행복하고 보고 싶어 지는 해가 있다. 득실을 따지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게 되는 해가 분명히 있다. 서로가 서로의 해를 존중하고 나누고 알게 되는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안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서로의 지지 않는 해를 나누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영토가 광대해 해가 지지 않는다던 대영제국은 결국 제국의 자리를 물려줬다. 우리는 성별과 세대, 국가의 틀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서로 나눌 때 우리의 세계는 존중을 바탕으로 확장된다. 개체의 특성이 일반보다 크다. 모두가 저마다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그렇게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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