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에 교정 장치를 달았더니 인공적인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란 본디 음식물을 부수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교정 장치가 이를 부수고 있다. 아이러니다. 이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음식물을 부술 수 없다.
좋아하는 떡볶이는 먹을 엄두도 나지 않고 죽, 기껏해야 바나나가 고작이다. 이의 본래 기능을 상실하면서까지 교정을 해야 하는지 회의를 느낀다. 단순히 미적 목적이었다면 대충 만족하고 살 법도 한데 10년 뒤에 치아가 무너진다니 안 할 수도 없다
오감의 균형이 깨졌다. 뭘 하든 이가 뻐근하거나 쑤시거나 흔들리니 다른 감각을 돌볼 여유가 없다. 영화나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주 듣던 감미로운 발라드, 신나는 재즈, 잔잔한 클래식은 귀에 머물지 못한다. 음식은 죽이 그나마 낫다. 맛을 탐닉하는 욕망은 온 데 간데 없다. 아프지 않고도 배를 채울 수 있다면 만족한다.
인간은 고통보다도 쾌락의 감각이 적다.
-리투스 리비우스 -
우둔한 나는 이번에도 겪고 나서야 깨닫는다. 완전히 건강할 때는 행복을 느끼지 않으면서 변변찮은 병에는 고통을 느낀다. 이 고통이 끝나가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 고통만 끝나면 행복할텐데 하면서 건강할 때는 행복을 모른다.
행복이란 고통이 없는 것, 불행이 적은 것을 뜻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행복해봐야 나의 보잘 것 없는 인식은 손쉽게 한계에 도달한다. 지금 불행하지 않다는 건 어쩌면 꽤 많은 행복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버티는 게 힘들어도 그럭저럭 할 만하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게 현명하다. 오늘은 행복을 탐하는 대신 불행이 적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