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나보다 조금 앞서 걸으며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가을의 발자국을 느끼는 촉매는 다양하다. 단풍과 페가수스자리, 송편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올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다른 것보다 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몹시 느끼고 싶었다. 8월은 이제서야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외로운 쌀쌀함이 간절했다.
이제 공기가 힘겹지 않다. 뭉쳐 있던 것들이 헐거워져 여유가 생겼다. 한낮에도 그늘이 피난처 역할을 하니 그늘답다. 폭염 속에서 원망도 많았지만 지금은 반갑다. 해가 지면 차가운 바람은 얼굴을 살랑인다. 나의 미소는 가을의 시원한 발자국에 대한 답례로 절로 나오는 감사다.
발자국은 앞서 간 궤적이자 뒤를 향한 배려다. 등대처럼 길을 가르쳐주고 눈밭에서는 등산객에게 위험을 알려주기도 한다. 누가 남겼는지가 발자국의 속성을 좌우한다. 믿을 만한 존재의 발자국은 나의 방향이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발자국에 대한 후회와 원망은 그때 이미 유효하지 못하다. 누군가 남긴 발자국보다 나의 발걸음에 신중을 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계절의 발자국은 거짓이 없다. 속이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다. 굳이 일기예보를 볼 필요도 없다. 알아차리기 쉬워서 직관도 꽤 유효하다. 힘든 계절도 있지만 계절은 바뀔 때마다 반갑고 설렌다. 계절이 믿음직한 발자국을 남기는 덕분이다.
사람은 계절보다 더 진한 발자국을 남긴다. 감정, 진로, 상황에 관한 무수한 선택지가 있다. 내가 보고 듣는 모든 사람이 발자국을 남긴다. 어떤 발걸음을 믿고 따를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어 분별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짙은 발걸음을 남기고 싶다.
계절처럼 나에게 거짓 없는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우리끼리만 편애한다. 서로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고 지독히 신뢰한다. 관계의 방향을 정할 때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니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늘 감사를 표하고 더 줄려고 하나 부족함을 느낀다. 발자국을 볼 때 분별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아도 된다. 계절이 바뀜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듯이 이유 없이 그냥, 그래도 된다.